이미지 크게보기떠나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일상을 내려놓고 잠시 떠날 수 있다면 최고의 행복이다.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멋지게 부상해보자. 2016년 작. 김영화 화백

아주 오랜만에 골프장에서 아우와 함께 라운드를 즐겼다. 늦가을 정취를 만끽하면서 모처럼 웃고 떠들었다.

“형, 참 좋다. 골프장에 오니….” 함께 간 아우가 맑게 웃었다. 나는 대답 대신 미소로 화답했다. 어릴 적부터 어렵고 힘들 때는 바람소리, 물소리, 새소리를 즐겨들었다. 마장동이나 청량리에서 버스 또는 기차를 타고 가서 용문사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다. 라운드 도중 바람, 물, 새소리가 코와 귀, 눈에 다가와 살랑거렸다.

아우는 요즘 정말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계단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급히 집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계속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가는 뛰어내릴 것 같아서. 나 역시 요즘 너무 힘들어 한강변에 차를 세워놓고 그대로 액셀을 밟을까 하는 충동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작은 고백이 서로에게 위로가 됐다. 가장이라는 무게, 비정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삶의 경쟁이 우릴 벼랑 끝으로 내몰곤 한다.

1년 전 대기업 상무로 있다가 은퇴한 형이 있다. 쉬고 있으면 늘 불안하다고 말했다. 그때 동기 형이 한마디 했다. “30년 넘게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았잖아. 수고했어. 그만하면 된 거야”라고 말하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순간 목젖 끝에서 형언할 수 없는 촉촉한 알갱이들이 넘어와 애써 시선을 돌려 천장을 보았다.

맞다.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것인지. 우린 너무도 완벽한 초인을 바라는 것이 아닌지 반성해본다.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말한 것처럼 60점의 능력이면 일을 맡기기에 충분한데 말이다. 우린 너무도 많은 것을 가져야 하고, 그래야 인정받는다고 생각한다. 골프장에 가면 꼭 지난번보다 잘 쳐야 하고 못 치면 화내고…. 60점이면 충분한데.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결정적인 득점 기회에, 그것도 종료 직전 슛을 하지 않고 공을 손으로 잡은 선수가 있었다. 부상한 선수가 일어나지 못하자 취한 ‘고의 핸드볼 반칙’이었다. 그는 야유 대신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해 페어플레이상도 받았다.

가끔은 치열함보다는 순수함을, 빠름보다는 느림을 선택해도 좋을 것 같다. 우린 참 열심히 살고 있는 것인데 자꾸 경쟁 대열로 내몰고 있다. 이럴 때는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그래, 참 너 열심히 달려왔다. 수고했다”라고 자신에게 박수를 보내주면 안 될까.

이종현 시인(레저신문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