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갈수록 지능화하는 보험사기를 잡아내기 위해 각 보험사가 경쟁적으로 ‘사기적발시스템(FDS·Fraud Detection System)’을 정교하게 손질하고 있다. 사진은 NH농협손해보험 보험사기 전담조사팀(SIU)이 올해 11월 FDS를 구축한 뒤 시연하는 모습. NH농협손보 제공

- (中) 보험사 자체 대응 시스템

경찰관 출신 등 ‘전담조사팀’
지난 보험금 수령 내용 파악
의심 정황 땐 금감원에 보고

금감원, 사기분석시스템 운용
계약 건수·사고 통계 등 분석
‘혐의지수’ 산출해 적용·처리

지난 2014년 2월 초 오전 5시쯤 서울 강동 지역의 일방향 3차선 도로. 2차로로 가고 있던 운전자 A 씨는 앞서가던 차량이 급정거를 하자 손 쓸 사이도 없이 앞 차량의 후미를 들이받았다. 앞 차량이 급정거한 이유는 또 다른 차량이 그 차량 앞으로 갑자기 끼어들기를 했기 때문이다. A 씨는 황당했지만 보험사에 연락할 수밖에 없었다.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B보험사의 조사 요원이 현장을 확인하고 관련 조치를 취했다. 조사 요원으로부터 사고 현황을 파악한 B보험사의 보험사기 전담 조사팀(SIU)이 가동됐다. A 씨에게 사고를 당한 20대 초반 C 씨의 사고 경력과 보험금 수령 이력을 확인하기 위해 ‘사기적발시스템(FDS·Fraud Detection System)’에 관련 정보를 입력했더니,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됐다. 그 지역에서 과거에도 비슷한 유형의 사고를 낸 뒤 합의금과 차량 수리비 등을 보험금으로 타낸 것이다. B보험사는 조사를 마친 뒤 금융감독원에 인지 보고를 했고, 금감원은 이 사건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B보험사와 경찰이 합동으로 수사를 벌인 결과, C 씨는 사고 당일 동네 선후배 관계인 D 씨와 사전 공모해 차량을 빌린 뒤 범행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D 씨는 끼어들기 역할을 맡고, C 씨는 급정거를 해 A 씨의 사고를 유발한 것이다. 과거 사고 경력을 더 추적하자 일당이 10명 이상으로 늘어났고, 이들은 20여 차례에 걸쳐 사고를 내서 3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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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금융당국과 보험사들에 따르면, 보험사기 범죄 수법이 갈수록 지능화·조직화하면서 이들 사기범을 추적하는 보험사들의 조사 방법도 이에 대응해 고도화·첨단화하고 있다. 대부분 보험사가 보험사기 적발시스템을 도입해 그동안 축적된 각종 데이터를 기초로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환자나 사기범들을 잡아내고 있다. 특히 보험사들은 SIU에 다년간의 수사 경력이 있는 전직 경찰관 출신들을 채용하는 등 전문인력을 활용해 보험사기 조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들은 사고 현장에서 본능적인 ‘촉’을 발휘해 보험사기 단서를 찾아내거나 잠복이나 탐문 등 경찰과 비슷한 조사 방법을 활용한다. 생명보험이나 장기보험, 실손의료보험 관련 보험사기의 경우 의료기관과 공모 관계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보험사 조사관이 직접 ‘의료체험’을 통해 보험사기 여부를 확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험사기 수법이 지능화하면서 과학적인 보험사기 적발시스템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내 한 손해보험사 보험조사부 김모 조사실장은 지난 9월 지방의 한 한방병원에서 병원 사무장과 환자들이 공모해 보험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김 실장은 즉시 내부 보험사기 적발시스템에 혐의가 의심스러운 한방병원과 관련된 자료를 조회했다. 수년 전 경미한 보험사기 전력이 드러났지만, 그 후에는 특별한 혐의점이 없었다. 김 실장은 그 한방병원에 직접 가서 어깨가 결린다고 등록한 뒤 침을 맞았다. 이른바 ‘의료체험’ 수사 기법인 셈이다. 진료비 내역을 살펴보니 여느 한방병원과 달리 진료 항목도 많고 단가도 비쌌다. 이 병원을 이용한 환자들의 신상을 파악해 진료비 청구 내역을 조사했더니 실제보다 과다 청구된 데다 여기저기 병원을 옮겨 다니며 ‘의료 쇼핑’한 흔적도 보였다. 김 실장은 금감원에 보험사기 인지 보고를 했고, 경찰이 조사해보니 사무장 병원 5곳이 연결돼 환자 100여 명과 공모해 수억 원의 보험금을 타낸 조직적인 보험사기로 드러났다.

김 실장은 “최근 보험사기가 보험사와 경찰의 수사를 피하기 위해 워낙 교묘하고 지능적인 수법을 쓰다 보니 조사 기법도 더 첨단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보험사기범들의 창이 날카로울수록 보험사들과 금감원의 방패도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특히 금감원은 현재 운용하고 있는 ‘보험사기 분석시스템(IFAS·Insurance Fraud Analysis System)’을 이용해 보험사기 기획 조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먼저 보험 계약자별로 구축된 계약 건수와 사고 통계 등을 집어넣어 ‘사기혐의지수’를 뽑아낸다.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치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기혐의 점수가 산출되는 식이다. 또한 ‘사회관계망 분석(SNA·Social Network Analysis) 시스템’을 활용해 사기혐의지수가 높은 사람들의 공모 여부도 파악한다. 실제로 혐의 점수가 높은 A와 B라는 사람을 SNA에 넣었더니 같은 날짜에 A와 B가 추돌 사고를 내고, 또 B와 C가 또 다른 날짜에 추돌 사고를 내고, 이어 C와 A가 사고를 낸 기록이 나왔다. 이럴 경우 이들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공모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 경찰이 조사한 결과 공모 관계가 드러나 사법 처리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사기 적발시스템도 과학적인 기법을 활용함으로써 점점 고도화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빅데이터를 활용해 IFAS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화재의 경우 SIU에 리스크 분석팀과 함께 자동차보험 조사반과 장기보험 조사반을 분리 운영해 전문성과 업무 효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현대해상은 손해보험업계 최초로 FDS를 구축한 데 이어 고액 보험금을 노리고 민원을 넣은 뒤 보험사 임직원을 협박하는 ‘범죄형 블랙컨슈머’ 대응 프로세스도 운영하고 있다.

김충남 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