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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우여곡절 끝에 야 3당이 대통령 탄핵안을 지난 3일 발의함에 따라 박근혜 대통령의 진퇴는 일단 9일 있을 국회의 탄핵안 표결에서 가려지게 됐다. 법치의 관점에서 보면 박 대통령의 거취와 관련해 국회가 탄핵으로 가닥을 잡은 건 그나마 다행이다. 사실, 여야가 헌법적 근거가 없는 임의적인 합의를 통해 대통령의 조기 퇴진과 조기 대선으로 가는 것은 아무리 정치가 ‘가능의 예술’이라 해도 매우 나쁜 선례를 남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6차례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분노한 민심이 아무리 거세다 할지라도, 한때 주권자인 국민이 정당한 절차를 통해 선출한 대통령을 숫자로 압박해 물러서게 하는 일이 발생하면 앞으로 법 제도의 바깥에서 군중을 선동하는 정치인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게다가 대통령의 조기 퇴진을 반대하는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을 뿐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도 있다.

대통령이 중대한 잘못을 범했다고 판단되면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대의권(代議權)을 부여받은 국회의원들이 헌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 탄핵하는 게 옳다. 민주주의는 다수결과 법치라는 2개의 바퀴로 굴러간다. 적법 절차는 어떤 경우에도 무시될 수 없다. 이번 탄핵소추안에는 소추 사유 가운데 하나로 법치국가 원칙의 위배도 들어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헌법의 탄핵 절차를 밟는 게 옳다.

현대적 탄핵 제도는 18세기 미국 혁명 후 주권재민사상이 제도화될 때 버지니아 주 헌법에 처음 도입됐다가 미합중국연방 헌법에 거의 그대로 편입됐다. 영국과는 달리 탄핵의 대상이 되는 공직자와 위법 행위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규정했는데, 대통령도 탄핵의 대상에 포함됐다. 대통령 탄핵의 경우 주권의 수임자를 처벌하는 일인 만큼 그 절차가 까다롭다. 또한, 일반 법정에서는 유죄 판결이 나지 않을 수도 있는 국민 신뢰의 위배 같은 정치적 범죄도 탄핵의 사유가 될 수 있다. 이 두 가지 점에서는 미국의 제도를 답습한 우리나라 헌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탄핵의 절차가 시작된 이상 세 가지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모든 국회의원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탄핵 표결에 참여해야 한다. 그래야만 표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그것이 확실하게 민의(民意)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둘째, 탄핵안의 가결이 십중팔구 확실해 보이는데, 이 경우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유일한 대의기관인 국회는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면서 국가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도록 도와야 한다. 우리 헌정사에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일이 한 차례 있긴 했지만, 그때의 경험이 시스템으로 잘 정비돼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차피 황교안 국무총리 체제는 관리형 대행체제가 될 공산이 크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에서 최고의 권력기관인 국회의 긴밀한 협조를 구할 것인데, 국회는 대행체제를 흔들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와서 다음 정부로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치권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리가 정치적 압박이나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국회의 탄핵 결정을 인용할 개연성이 커 보이는 헌재의 평결이 오로지 법리적 판단에 근거했다는 정당성을 얻게 된다. 촛불집회 주최 측은 국회의 탄핵 결정이 나더라도 계속 집회를 열어 압박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헌재의 평결을 수긍하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