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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대한민국호(號)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내우외환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있다. 지난달 8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예상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면서, 한국과 국제사회는 적잖게 당황하고 있다. 또, 10월 중순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언론에 본격 보도되기 시작했지만, 대통령 탄핵 논의와 같은 헌정 위기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지난 29일 박근혜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방안을 만들어주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대(對)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대한민국호를 위협하는 초특급 정치 태풍이 안팎에서 몰아치고 있다.

위기란, 한 조직(국가)의 평소 업무가 마비되고, 조직의 안정적 미래가 불확실해지며, 해당 조직과 연관되는 공중(公衆)에게 부정적 영향을 가져오는 상황이다. 어떤 개인이나 조직도 위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위기가 지나가더라도 또다시 새로운 위기를 겪게 마련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우선 인적·물적 손실이 야기되며, 급기야 조직의 생존 문제 역시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든다. 그러나 위기관리를 지혜롭게 함으로써 그 조직이 한 단계 더 발전할 기회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위기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분석하고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위기는 세 가지 속성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호의 위기를 분석해 보자.

첫째, 위기란 일단 ‘사전에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다. 대통령의 통치행위가 민주시민이 상정하는 바와 전혀 다르게 정상적 조직과 계통을 통하지 않은 것에서 현 국내 헌정 위기가 초래됐다. 이를 부당하다고 판단하는 국민이 대통령의 탄핵 또는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다섯 차례에 걸친 ‘토요평화시위’는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대통령과 조직에 대한 정당한 시정 요구다. 또 하나의 예측하지 못한 위기는 트럼프의 미 대통령 당선으로 본격적으로 닥쳐올 것이다. 이 역시 대한민국호에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박 대통령에게 결연한 마음으로 엄중한 권리를 행사하고 있는 우리는 향후 엄청난 대외적 파고에도 슬기롭게 대처할 방안과 전략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둘째, 위기는 ‘중대함’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중대함이란, 위기로 인해 조직의 일상적 운영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말한다. 하나의 사건(事件)은 제한적으로 조직의 운영을 방해하지만, 위기는 조직 자체의 운영에 영향을 미친다. 현 상황은 결코 일회성 사건이 아니다. 1987년 개헌 이후 30년 동안 단임제 대통령제의 폐해로부터 야기되는 반복성 위기다. 이를 계기로 대통령제를 보완하든지 다른 대안을 모색하면서 안정적 국가 운영을 위한 대안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동시에 분단 상황은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호를 옥죄었던 민족의 아픔이다. 분단의 엄중함을 망각하고 한순간이라도 방심하고 소홀히 하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의 파고가 우리를 덮칠 것이다. 또한,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환경과 국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분석하는 능력 배양만이 위기의 중대함을 예방하는 열쇠다. 지난 두 달 동안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집중했는지를 스스로 돌이켜봐야 한다. 위기는 우리가 방심한 틈을 타고 북한과 외부로부터 갑자기 닥쳐온다.

셋째, 위기는 ‘위협적’이다. 위기가 발생하면 피해가 따른다. 그 피해는 인명 손실, 조직과 기업의 생산성 저하 또는 수익 감소 등 재정적 손실, 신뢰 또는 평판 손실, 존재감의 손실 등으로 이어진다. 이를 방지하려면 위기관리가 중요하다. 다섯 차례 대규모 ‘토요평화시위’는 기존 대한민국 국가 조직의 비정상화에서 비롯됐고, 국민 자존심의 손실과 시간·재정의 낭비로 이어졌다. 1998년 5만 건의 위기를 분석한 결과 86%가 사전에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미국 위기관리연구소의 연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력에 따라 위기를 사전·사후에 잘 관리할 수도 있다는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위기는 ‘위태할 위(危)’와 ‘틀 기(機)’의 결합이다. 위기는 위험하지만, 관리 여하에 따라 조직에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호는 대내적 안정, 철저한 분단 관리와 통일, 대외적 경쟁력 확보로 끊임없이 발전해야 하는 우리의 보루다. 이제 다시 하나가 돼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