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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에도 지고지순한 사랑은 가능한지, 문득 궁금해진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세태를 개탄하던 것도 이미 오래전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경제적 여건에 따라 연애 상대가 달라지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져 있다. 경제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현실에서 사랑이 언제까지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을 지우기 쉽지 않다.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KBS 2TV 월화미니시리즈 ‘우리 집에 사는 남자’가 낯설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이리라.

동명의 웹툰을 각색한 이 드라마는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한 청춘남녀의 사연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5년 차 항공사 승무원 홍나리(수애)가 돌아가신 어머니 신정임(김미숙)을 대신해 만두가게를 운영하며 새아버지라고 주장하는 고난길(김영광)을 만나 겪는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홍나리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어, 결혼을 약속했던 애인 조동진(김지훈)이 승무원 후배 도여주(조보아)와 바람피우는 현장을 목격하고 충격에 빠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세 살 연하의 고난길이 새아버지 행세를 하며 어머니가 남긴 유산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상황까지 발생한다.

믿기지 않는 상황에 처한 홍나리에게 리조트 건립에 필요한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그린랜드 그룹 셋째 아들 권덕봉(이수혁)이 접근하면서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권덕봉의 부추김에 넘어간 홍나리는 고난길의 정체를 의심하고 주변을 탐색하다가 그와 어머니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마음이 흔들린다. 어린 시절 고난길과 만났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고난길이 어머니의 땅을 지키기 위해 새아버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감동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 만두가게를 포함해 신정임이 남긴 땅을 둘러싼 문제 때문에 두 사람은 법적으로 부녀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홍나리 아버지의 명확하지 않은 죽음에 고난길이 연루돼 있다는 것도 또 다른 장애물이다. 아버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지도 모르는 남자를 사랑하는데, 그 남자가 하필이면 법적으로 새아버지라는 상황은 좀처럼 공감하기 쉽지 않은 설정이다. 홍나리를 향한 고난길의 순수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극적 장치가 몰입을 방해하는 부작용을 일으킨 꼴이다.

그래도 이들은 지고지순하게 사랑한다. 고난길은 홍나리를 지키기 위해 그녀의 새아버지로 남고, 홍나리는 사채업자의 협박 때문에 시작된 혼인무효소송에서 고난길이 새아버지라고 증언한다.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사랑을 지키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만나서 사랑하고 결혼을 계획하는 남녀 사이가 되고 싶었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홍나리와 고난길의 관계에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속단할 수 없다.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에서 부녀로 변한 것 또한 고난길의 순수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애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신정임 부모의 고아원 화재 사건이 자신의 할아버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권덕봉의 선택도 주목할 만한 변수로 남아 있다. 이야기가 결말로 향할수록 고난길이 새아버지와 의붓딸이라는 법적 관계를 어떻게 청산하고 홍나리와의 사랑에 성공할지 궁금해진다.

충남대 교수·드라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