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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동 경제산업부 차장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4년 대통령 중임제(重任制), 이원집정부제, 의원내각제 등 권력 구조에 대한 논의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어제오늘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이 있다는 인사가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까지 확산하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1987년 개헌의 부산물인 현행 헌법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낡은 옷’이 됐다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국민은 별로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이 있다는 측근의 국정 개입 의혹도 낱낱이 밝혀져야 할 일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경제적 관점에서 보자면, 박근혜정부(2013년 2월∼2018년 2월) 막바지에 툭 튀어나온 개헌과 대통령 측근의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 걱정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개헌과 대통령 측근의 국정개입 의혹이 ‘여론의 블랙홀’이 되면서, 국정을 ‘문맹(文盲) 상태’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과 대통령 측근의 국정 개입 의혹이 불거진 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김영삼정부(1993년 2월∼1998년 2월)의 사실상 마지막 해였던 1997년이다. 그해 우리나라 정부, 국회, 언론, 국민은 모두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경제와 민생 문제가 아니라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경제는 급속도로 위기 상황으로 빨려들고 있었지만,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단군 이래 최악의 국난(國難)’이라는 외환위기는 그렇게, 전 국민이 새로운 권력의 등장과 각종 스캔들에 눈이 멀어 있을 때 발생했다. 돌이켜보면, 1997년에도 한보철강 부도 등 위기의 징후는 많았다. 아무도 위기의 징후를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다. 특히, 국가 부도의 위기에 몰리는 상황인데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조차 하지 않은 경제 관료들의 무소신과 무책임은 더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기왕 개헌 논의가 시작됐으니 전 국민이 직·간접적으로 개헌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대통령과 사적인 인연이 있다는 측근의 국정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과 그에 따른 책임 추궁이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개헌 논의와 각종 스캔들 때문에 경제와 민생 문제가 또다시 뒷전으로 밀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당장 12월 2일이 마감 시한인 내년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정상적으로, 깊이 있게 이뤄져야 한다. 부동산 대책과 신속하고 정확한 정책 결정이 가장 중요한 기업구조조정 등 경제 현안에 대한 논의도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올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7%(속보치)를 기록하면서, 경제성장률이 4분기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성장률이 아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오는 12월이나 내년 1∼2월에는 재개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살펴보면, 패권 국가(hegemonic state)가 금리를 인상할 때 글로벌 경제가 발작을 일으키지 않은 적이 거의 없다. 개헌과 스캔들에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경제와 민생 문제가 방치되고, 그때 외부에서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면 우리나라가 다시 외환위기 직전처럼 대책 없는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haed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