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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전트의 세계

스포츠는 비즈니스다. 스타들은 화려한 기량으로 팬들을 사로잡으며 상품성을 높여 수백억 원에 거래된다. 특히 축구는 선수 이적과 관련, 천문학적인 금액이 오간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프랑스의 폴 포그바가 역대 최고 이적료인 8900만 파운드(약 1227억 원)에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잉글랜드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옮겼다. 워낙 큰돈을 주고받기에 잡음이 일기도 한다. 지난달 27일엔 잉글랜드의 명장 샘 앨러다이스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이었던 앨러다이스가 에이전트로 위장한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 기자에게 서드파티 오너십, 즉 선수의 제3자 소유권 금지 규정을 피하는 편법을 알려주겠다면서 40만 파운드(5억7546만 원)를 요구하는 ‘몰래카메라’가 공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앨러다이스는 책임을 지고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앨러다이스는 취임한 뒤 67일 만에 물의를 일으키며 사퇴, 역대 잉글랜드 사령탑 중 최단명으로 등록되는 수모를 겪었다.

서드파티 오너십이란 선수 본인, 소속 구단이 아닌 3자가 선수의 소유권 일부를 보유하는 걸 뜻한다. 재정이 약한 구단을 대신해 에이전트 등 3자가 선수에게 돈을 지급하고 그 대가로 선수의 지분을 나눠 갖는 일종의 관행이다. 지분을 소유한 3자는 자신이 투자했던 선수가 이적할 때마다 이적료의 상당 부분을 받는다. 예를 들어 A구단은 B선수를 영입했지만 입단 계약금을 지급할 능력이 안 된다. 이때 C에이전트가 A구단 대신 B선수에게 계약금을 지급하고, 그 대신 B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이적할 때 C에이전트는 이적료의 일부를 자신의 몫으로 챙긴다. 에이전트 등 3자가 선수와 직접 서드파티 오너십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다. 주로 남미 빈민가 출신의 10대 유망주들이 대상이 되며, 궁핍한 선수를 금전적으로 지원하고 선수가 이적할 때 몸값의 일부 등을 보장받는다.

서드파티 오너십으로 인한 폐해는 무척 크다. 에이전트 등 3자가 이익을 최대화하면서 이적료가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큰돈이 예상될 경우에만 이적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서드파티 오너십은 현대판 노예제에 비유되며, 국제축구연맹(FIFA)과 각국 축구협회는 3자 소유권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앨러다이스의 예에서 알 수 있듯 근절되지 않고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박지성의 절친한 친구였던 아르헨티나의 카를로스 테베스(보카 주니어스)는 2006년 브라질 코린치앙스에서 동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FC 바르셀로나)와 함께 잉글랜드의 웨스트햄으로 옮겼다.

그런데 테베스와 마스체라노의 소유권은 코린치앙스가 아니라 현지 투자회사가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웨스트햄은 서드파티 오너십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테베스와 마스체라노를 영입했기에 잉글랜드축구협회로부터 550만 파운드(75억8510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스페인의 FC 바르셀로나는 2013년 브라질 산투스에서 네이마르를 5700만 유로(771억 원)에 영입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 금액은 네이마르의 소유권 일부를 갖고 있던 3자에게 주는 수수료가 포함된 8620만 유로(1166억 원)였다. 네이마르 이적과 관련한 서드파티 오너십으로 인해 바르산드로 로셀 당시 바르셀로나 회장이 물러났다.

여전히 횡행하는 3자 소유권 행사의 중심엔 에이전트가 있다. 에이전트는 선수의 계약 등을 대리하면서 선수를 보좌하는 존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론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다. 에이전트의 실력 행사는 서드파티 오너십에 국한된 건 아니다.

지난달 잉글랜드 맨체스터시티의 주제프 과르디올라 감독이 야야 투레의 에이전트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투레의 에이전트인 드미트리 셀루크는 투레가 맨체스터시티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명단에서 제외되자 “우승하지 못한다면, 과르디올라 감독이 투레처럼 훌륭한 선수에게 굴욕감을 안긴 건 잘못이었다고 말하기 바란다”고 비난했다. 선수 기용은 감독의 고유 권한. 그렇지만 에이전트인 셀루크는 자신의 고객인 투레를 출전자 명단에서 제외한 감독에게 공개적으로 화살을 날렸다. 감독에게 항의할 수 있을 만큼 에이전트의 입김은 세다.

FIFA는 2014년 에이전트 제도를 폐지했다. FIFA는 축구 관련 상식과 민법, 선수 계약 및 이적 규정과 분쟁 사례 등의 시험을 치러 합격자에게 에이전트 자격증을 발급했다. 하지만 실제 에이전트 중 70%가 자격증이 없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에이전트 자격증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 에이전트 제도를 폐지했다. FIFA는 지난해 3월 에이전트를 대신하는 중개인 제도를 시행했다. 중개인과 에이전트는 선수의 대리인이란 점에선 같다. 다만, 중개인의 경우 에이전트와 달리 시험을 치르지 않고, 또 자격증을 획득하지 않아도 된다. 각국 축구협회에 서류 및 등록비를 제출하고 보험에 가입하는 등 절차만 마치면 누구나 중개인으로 활동할 수 있다. 중개인이든 에이전트든 축구 선수를 대리하기에 대리인 절차가 간소화된 셈이다. 여전히 선수를 대리하는 사람은 에이전트로 통칭된다.

FIFA는 에이전트 제도를 폐기하고 중개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중개인의 수수료를 3%로 정했다. 선수 이적에 관여했다면 계약 기간에 선수 기본 급여의 3%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이적 중개로 받을 수 있는 수수료 역시 3%로 제한됐다. 하지만 중개인, 에이전트가 실제로 얼마를 받았는지를 확인하긴 어렵다. 이적 계약서 등 관련 자료가 공개되지 않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축구협회는 지난 4월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의 에이전트 비용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올 1월까지 4개월 동안 총 1억3000만 파운드(1795억 원)의 에이전트 비용이 지불됐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1000만 파운드(138억 원)의 에이전트 비용을 지급해 가장 많았고 리버풀은 667만2713파운드(92억1801만 원), 맨체스터시티가 588만 파운드(81억 원)로 뒤를 이었다. FIFA는 해외 이적으로 발생하는 에이전트 수수료가 평균적으로 전체 비용의 28%에 이른다고 추산하고 있다. 역대 최고 이적료를 경신한 포그바의 에이전트 수수료는 전체 금액의 20%가 넘는 2000만 파운드(275억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유럽에선 축구 중개, 즉 에이전트 수수료로 비현실적인 3%를 고집하지 말고, 10%로 제한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에이전트는 거액의 수수료를 챙기기에 구단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에이전트 수수료가 없다면 이적료, 즉 몸값 거품을 상당 부분 걷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나폴리의 구단주 아우렐리오 드 로렌티스 “에이전트는 축구의 암”이라며 “왜 에이전트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로렌티스는 “할리우드에선 배우들이 직접 에이전트에게 수수료를 지급하거나 아니면 배우가 직접 영화사와 거래한다”며 “그러나 축구에서는 구단이 거액의 에이전트 수수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