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예산안 심의를 앞두고 거야( 巨野)가 ‘법인세 인상’ 방아쇠를 당겼다. 국민의당은 29일 과세표준 200억 원을 초과하는 기업에 매기는 법인세 최고 세율을 현행 22%에서 24%로 올리는 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더불어민주당도 과세표준 500억 원 초과 구간을 신설해 25%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개정안을 내놨다. 증세에 부정적이던 국민의당이 더민주당보다 훨씬 센 ‘기업 증세’를 들고 나온 셈이다. 법인세 인상은 야당이 수시로 들고 나왔지만 과반 의석을 차지한 여당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그런데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소야대이고,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국회의장 직권으로 법인세법 개정안을 ‘예산 부수법안’으로 지정하면 12월 2일 예산안과 함께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기 때문이다. 야당 출신인 정세균 의장도 이미 그런 의사를 밝혔다.

소득 양극화가 심화하고 복지 수요도 급증하는 시점에서 기업 증세는 짚고 넘어가야 할 숙제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현재의 장기 경기침체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은 경제활력을 떨어뜨리는 맹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작금의 상황이 20년 전의 외환위기 전조(前兆)를 떠올리게 할 만큼 심각하다는 경고가 나오는 판국 아닌가. 한국조세연구원도 법인세를 1%포인트 올릴 경우 실질 GDP는 최대 1.13% 하락한다고 예측했다. 법인세율 1%포인트 인상이 고용을 0.3∼0.6% 줄인다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보고서도 나와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앞다퉈 법인세를 낮춘 것도 이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법인세는 내렸다. 경기가 살아난 후에 검토해야 할 과제라는 얘기다.

야당이 법인세 인상에 앞서 당장 해야 할 일은 32개나 되는 법인세 세액 공제 항목 등 난립해 있는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의 정비다.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시장 개혁과 규제 완화에도 힘을 실어줘야 한다. ‘일자리의 보고’인 서비스산업법 통과에도 협조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책무를 다하지 않으면 야당의 법인세 인상은 대선용 계략(計略)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