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게임’ 주도했던 거대船社
물량 흡수… 구조조정 가속화

한진해운 ‘좌초’ 소식에 세계 대형 선사들이 경영 효율화를 실행에 옮기고 물량 흡수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거듭되는 운임 하락과 선박 과잉 공급에 신음하는 해운업계에 세계 7위 선사의 파산은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모양새다. 이에 따라 운임 하락으로 치킨 게임을 주도해온 거대 선사들이 승자 독식 계획을 본격적으로 가동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건 15%로 세계 해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머스크의 군살 빼기 행보다.

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올해 구조조정 계획을 피력했던 머스크의 자회사로 해저 유전 시추장비 수송 서비스를 맡는 머스크서플라이서비스는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결정된 직후 해상직 인력 1450명 중 400명을 9월 내에 곧바로 정리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회사는 또 18개월 안에 선박 20척을 줄이고 이 가운데 10척은 연내 매각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미 해양예인선(anchor handling vessels) 2대를 팔아 치운 것으로 확인됐다.

모회사인 머스크 역시 지난 1일부터 중국 10개 항만에서 피더 서비스(대형 항만과 인근의 중소형 항만을 연결하는 서비스)를 중단하고 비용 감축에 들어갔다. 중국 수출입 실적이 예전만 못한 데다 치열해진 항만 간 경쟁에 따른 공급과잉 문제가 불거지자 특별 조치를 내린 것이다.

한진해운 물량을 ‘주워 담기’하려는 경쟁도 가시화하고 있다. 머스크는 오는 15일부터 4000TEU(1TEU는 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급 선박 6척을 투입해 상하이~부산~로스앤젤레스(롱비치)를 거치는 신규 노선인 ‘TP1’을 시작한다. 점유율 13.2%인 2위 선사 MSC도 같은 날부터 중국~부산~캐나다 노선을, 중국 코스코(COSCO)와 대만 양밍은 중국~부산~미국 노선에 선박을 늘렸다. 그동안 아시아∼미주노선에서 한진해운은 7.4%의 점유율을 보이며 머스크(9.3%), MSC(7.5%)와 치열하게 경쟁해 왔다.

해운업계에서는 허리띠를 졸라맨 공룡 선사들이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메우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저가 운임 공세를 펼친 뒤 안정적 독과점 시장을 형성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미 머스크는 올해 2분기 평균 운임을 FEU(4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당 1716달러로 전년 대비 24%나 내려 해운업계 수익성 악화를 가중시켰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위기에서 어떻게 버틸 수 있느냐가 해운사들의 최대 과제”라며 “중소 선사를 몰아내고 10개 안팎의 공룡 선사들만 살아남을 경우 운임 상승이 불가피하다”고 예상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