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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식 논설주간

욕먹을 각오를 하고 쓴다. 한국 언론이 복합 위기에 처했다. 김영란법 대상에 언론인이 포함된 데다, 영화 ‘내부자들’의 부패 언론인을 연상시키는 송희영 파문까지 겹쳤다. 이런 일이 없어도 언론인에 대한 눈길은 곱지 않았다. 기자, 국회의원, 경찰, 세무공무원, 교사 등을 나열한 뒤 이들이 식당에서 식사하면 ‘밥값은 누가 낼까’ 하는 문제가 있다. 정답은 식당 주인이다. 우스갯소리지만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이들 직군이 모두 김영란법에 포함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겠다.

언론인은 원래 칭찬보다 비난을 받기 쉽다. 취재원은 홍보를 원하지만, 기자는 비판에 관심이 있다. 비리 사건을 특종 보도하면 가까운 취재원부터 다칠 가능성이 크다. 필자도 그런 가슴 아픈 경험을 많이 했다. 그래서 기자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인데, 진실한 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언론과 접촉하면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이 많이 오래 남는다. 김영란법에 언론이 포함된 것은 이런 막연한 ‘나쁜 놈’ 정서를 일부 국회의원들이 ‘물귀신 작전’으로 악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칙과 현실, 미래 세 측면에서 문제가 많다.

우선, 언론인은 공직자가 아니다. 권력 감시가 중요한 기능이니 오히려 반대편이다. 공적 권한도, 공무원연금 같은 퇴직 이후 보장도 없고, 전관예우는 더더욱 없다. 특히 민간 신문사는 세금이나 시청료로 운영되는 것도, 공공재인 전파 특혜를 받는 것도 아니다. 현실을 보더라도 언론인은 범죄 위험 직군에 속하지 않는다. 아니 속할 수가 없다. 정책 결정·집행이나 규제·인허가, 또는 수사·판결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청탁을 들어 주려 해도 누군가에게 다시 부탁해야 하므로 기껏해야 부패의 깃털이나 그림자가 될 수밖에 없다. 비리 언론인의 죄질을 최근 요란한 법조 고위인사들 혐의와 대조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 송희영 파문은 언론계에 치명적이다. 그러나 어느 분야에나 있는 개인적 일탈일 뿐이다. 언론인은 악(惡)에 대해서도 근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유혹에 빠질 수 있지만 절대다수의 언론인은 통제할 능력이 있다. 매일같이 답안지를 내고 소속 언론사와 경쟁 언론인, 그리고 수많은 독자와 시청자로부터 채점을 받아야 하는 투명한 직업이다. 유·무능은 물론 부패의 냄새도 오래 숨길 수 없다.

과거에 정치권력과 언론사 차원의 권·언 유착이 있었지만 민주화 이후 시정돼 왔다. 노태우 정권 때까지 남아 있던 그런 관행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자금 단절 선언과 금융실명제로 약화됐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때의 언론사 세무조사 및 기자실 개방 등으로 유착 구조 자체가 와해됐다. 지금도 그런 관성이 일각에 남아 있는지 모르지만 곧 사필귀정(事必歸正)이 될 것이다. 소수 언론의 정보 독과점이 깨진 인터넷 시대에 ‘밤의 대통령’은 불가능하다.

언론의 미래를 보더라도 김영란법은 순기능보다 역기능으로 작용할 것이다. 좋은 보도를 위해서는 취재원과의 ‘좋은 접촉’이 중요한데 이를 위한 공간을 위축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딥 스로트’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언론 환경 악화에 따라 유능한 언론인 이직이 늘거나 지망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언론 역량 약화가 우려된다. 미국 민주주의 설계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현상, 브렉시트처럼 민주주의 선두국가에서도 포퓰리즘 경향이 커지고 있다. 그만큼 언론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 언론을 도와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언론계 내부에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지만 자정(自淨) 역량이 충분하다. 물론 송희영 파문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신문법·방송법·통신법 규정에 따른 언론사 종사자 5만5507명, 이 중 기자직 2만9018명(2015 한국언론연감)의 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이제 3주 남짓 지나면 김영란법이 시행되고, 언론인 모두가 준수할 것이다. 이를 계기로 언론인 전체를 잠재적 부패 혐의자로 매도하기보다 유능한 언론인, 양질(良質)의 언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좋은 언론’은 ‘좋은 정부’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사실을 국민도, 권력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