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위 사진부터 북한에서 영화 ‘탈출기’를 촬영하고 있는 신상옥, 최은희 부부. 6·25전쟁 직후인 1954년 2월 미군 장병 위문공연을 위해 방한한 메릴린 먼로와 만난 최 씨. 1985년 김일성과 만난 신-최 부부. 1978년 2월 김정일과 함께 북한 혁명 가극 ‘피바다’를 관람하기 위해 만수대예술극장에 간 최 씨. 신상옥기념사업회 제공

김정일 육성·北 지도층 증언 고스란히
납북사실 입증위해 대화 녹음
崔 “자진입북 아니다” 밝히기도

고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씨 부부가 납북됐다가 8년 만에 탈출한 과정을 재조명한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가 오는 9월 22일 한국, 미국, 영국, 일본 등 4개국에서 동시 개봉한다.

영국 출신 로버트 캐넌·로스 애덤 감독이 연출한 이 다큐에는 최 씨와 최 씨 가족의 인터뷰가 담겨있으며 납북 사건을 담당했던 홍콩 형사, 미국 정보기관에서 근무했던 한국인, 북한 지도층 인사 등이 당시 상황을 설명한 내용도 수록됐다. 또 두 사람의 화려한 전성기 모습과 북한 촬영장에서 영화를 찍는 모습, 김일성·김정일과 함께 있는 모습 등도 보여준다. 지난해 제작된 이 다큐는 올해 제66회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제32회 선댄스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얻는 과정을 거쳐서 일반 관객을 만나게 됐다.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북사건은 지난 1978년 벌어졌다. 그해 1월 최 씨가 먼저 홍콩에서 납북된 후 신 감독이 갑자기 실종된 아내 최 씨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그해 7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북으로 끌려갔다.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우고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등의 영화를 제작한 후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북한의 감시를 피해 미국대사관에 은신을 요청하며 탈출에 성공했다.

일각에서는 두 사람의 납북- 탈출 과정에 의심을 품고 ‘자진 월북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국영화계의 대표적 인물이었던 두 사람이 박정희 정권과 밀월 관계에 있다가 1970년대 말에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두 사람은 김정일과 만날 때마다 몰래 대화 내용을 녹음했다고 한다. 언젠가 북한을 탈출했을 경우에 자신들의 납북 사실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 녹음 내용이 이번 다큐에 담겼고, 김정일이 두 사람의 납치 사실을 시인한 육성도 포함됐다. 두 사람을 만난 김정일이 “자기 발로 자기 뜻을 가지고 (북한으로) 오는 방법이 없느냐? 신 감독을 유인하려면 뭐가 필요한가?”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이는 북한영화를 진흥시키고 싶어 했던 김정일이 신 감독을 데려오기 위해 최 씨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최 씨는 2011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진해서 북으로 갔다는 소문이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해 “왜들 그러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북쪽에서 총살을 당했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대우받으면서 영화를 만들다가 왔다니까 그것을 고깝게 보는 것 같다”며 억울한 심정을 밝힌 바 있다. 그는 김정일의 지원을 받으며 북에서 영화인으로 대접받았음에도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한 것은 “늘 감시를 받으며 숨이 막혔기 때문”이라며 “탈출한 후에도 늘 주위를 살피며 눈치를 보는 꿈을 꾼다”고 했다.

두 감독은 “김정일의 납치사건 정황과 두 사람의 사랑은 논픽션치고 너무나 다이내믹했다”며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스토리를 진행할지 무한한 전개의 가능성을 보고 우리는 이 작품을 제작하고자 결정했다”고 다큐 제작의도를 설명했다.

김구철 기자 kc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