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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경제산업부장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바람이 한국 경제를 흔들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각국의 대(對) 한국 수입규제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의 2배에 달한다. 한국 기업을 겨냥한 반덤핑, 상계관세, 세이프가드가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관세 장벽은 더 무섭다. 다른 기술 규정을 적용해 수입을 막는 무역기술장벽(TBT), 까다롭게 굴거나 시일을 지연시키는 식품위생검역(SPS)과 통관절차 등이다. 전 세계 비관세장벽 48개 중 26개를 차지하는 중국은 지금도 한국 기업을 압박 중이란다.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과의 통상 마찰 우려가 나오는 지점도 여기다.

정부가 각국의 비관세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범 정부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힌 것은 당연한 조치다. 주형환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주요 20개국(G20) 통상장관 회의에서 “근거 없는 반(反)자유무역 정서 확산을 차단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나서 자유무역협정(FTA)의 긍정 효과를 객관적으로 분석해 제시해 달라”고 제안한 것도 시의적절했다. ‘경제영토’ 확장의 이득을 설파하는 게 최선의 방책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것만으로 충분한가.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세계화 물결이 한창이던 지구촌에 보호무역주의가 등장한 배경은 무엇보다 세계적인 불황이다. 세계 무역시장이 성장정체의 늪에 빠졌다. 교역 규모가 지난 18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각국마다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자유무역 확대가 내국 일자리를 외국에 빼앗긴다는 논리가 만들어졌고, 자국 내 경기부양에 대한 요구에 따라 자국산 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정책이 처방으로 등장했다.

자유무역을 해야 질 높은 제품을 값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자국 경제와 국민편익에 부응한다는 것은 대다수 경제학자가 신봉하는 기조다. 보호무역주의를 앞세운 중상주의에 맞서 ‘국제 분업’을 일깨운 애덤 스미스나, 영국과 포르투갈 간 포도주와 직물 무역의 상호 이득을 ‘비교우위론’으로 처음 설명한 리카르도 시대부터 그러했다.

하지만 자유무역이 실물경제를 주도하는 건 호황기 때다. 수요가 넘쳐날 때 호혜(互惠)의 무역이 번창한다. 지금처럼 수요는 부족한데 공급이 과잉인 불황 때는 자유무역의 효과를 의심하게 된다. 국가 간 무역수지 불균형이 타깃이 되고, 이게 외국 제품을 차별하는 빌미가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가 자유무역의 장점을 강조하는 데만 치중하는 게 과연 타당한가. 혹, 정책 균형을 잃는 것은 아닌가. 순진하게 우리만 당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거다. 우리도 자국 산업 보호의 장벽을 쌓을 건 쌓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 경제성장 과정에서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우대 정책을 펴온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인데, 국내 기업 ‘역차별’이 핵심이다. 경제특구의 외국인투자지원제도는 국내 기업을 대놓고 차별한다. 1998년 제정된 ‘외국인투자촉진법’은 18년째 외국자본에 ‘슈퍼 갑’의 위상을 보장하고 있다. 심지어 공공조달시장에서 중소기업의 판로를 지원하려 대기업 진입을 차단한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 지정제도까지 일부 시장에서 외국 기업의 국내시장 잠식을 초래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애플코리아는 연 매출이 2조 원에 이르지만 법인세를 내지 않는다. 100% 외국자본으로 설립된 법인이어서 공시나 감사의무도 없다. 정부가 내년부터 국내 매출 1조 원 이상의 다국적기업에 소득·세금 납부내역 등을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지만, 이른바 ‘구글세(稅)’ 도입까지 순조롭게 갈지 걱정되는 게 사실이다.

국내 소비자들의 인식도 한몫한다. 국산품 애용운동을 벌여도 시원찮을 판에 일본 요괴를 잡는 게임을 하겠다고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구글에 우리나라 지도 데이터를 내주라는 사람들, 배기가스 배출이 조작됐건 말건 “그래도 외제차 타자”는 사람들도 역차별 대열에 선 무리다.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세금을 안 내 남긴 돈으로 혁신에 나선다면 국내 기업들은 역차별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라인’을 일본 기업으로 키운 이 의장이 보호무역주의자는 아닐 터다. 오죽하면 그러겠는가. 우리 기업이 국내 시장에서마저 ‘호갱’이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