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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교 정치부 차장

역사는 이성적 사건들만의 나열은 아니다. 일탈된 인간 감정과 행위가 존재하듯,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을 빚어낸다. 그 상황을 비정상 또는 우발적 등 어떻게 표현하든 한순간과 한 시대를 점유하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불안정의 위태로운 만연은 행위자가 지배적이고 독단적일수록 전체를 파멸의 비극 속으로 몰고 간다.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독일 아돌프 히틀러가 그랬다. “썩은 사과는 상자째 버려야 한다”며 200만 명의 생명을 뺏은 캄보디아 폴 포트도 마찬가지였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스커드 C와 노동미사일을 발사(7월 19일)하면서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실험(4월 23일)에서도 그는 파안대소했다. 세상에 어떤 지도자가 수십만 명의 목숨을 위협하는 핵탄두 탑재 대량파괴무기(WMD)의 무력을 과시하면서 환호하는가. 그는 페르시아의 절대권력을 지녔다. 등을 숙이고 손으로 입을 가리는 부하들의 모습은 고대의 첫 대제국 아케메니드 왕조의 다리우스 대왕을 알현하는 신하들의 부조(浮彫) 그대로다. 북한 권력구조의 시계는 BC 400년대를 가리킨다. 북한 전체를 휘감고 있는 비이성의 극치다. 겹겹이 쌓여가는 부조리는 폭력으로 분출될 수밖에 없다. 넘치는 권력을 움켜쥔 젊은 지도자가 위험한 이유다.

북방 서해 5도에서는 ‘9월 위기설’이 흘러나온다. 판단과 전망의 토대는 크게 네 가지다. 먼저 북한 군부 입장에서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한반도 배치는 큰일도 아니고, 전력 우위 자신감을 내부에 심어줄 필요가 있다. 정찰총국장에 전격 발탁된 것으로 알려진 한창순 전 7군단장은 대남 도발로 주군에게 충성심을 드러낼 것으로 분석된다. 시점은 을지프리덤가디언훈련(8월 22∼26일) 이후 9월이 유력하다. 서해 인공어초는 위기의 도화선을 제공한다. 해양수산부는 9∼10월 북방한계선(NLL) 해역에 인공어초 80개를 투하할 계획이다. 개당 제작비가 1억 원이다. 가로 세로 각 13m, 높이 8.2m 구조물은 그물을 찢는 기능을 한다. 촘촘한 그물코로 치어까지 싹쓸이하는 고대구리(소형기선저인망) 악질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에 피해를 주고, 통발과 자망을 쓰는 우리 어선에는 영향이 없다. NLL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에 조업권을 팔아넘긴 북한은 인공어초를 ‘군사적 도발’로 규정하고 있다. 8개월 전 서북도서에 투입된 이스라엘제 무인정찰기 헤론(HERON) 3대도 북한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비이성을 제압하는 것은 이성이다. 국방부의 이성은 단호한 대응과 응징이고, 통일부의 이성은 교류와 협력이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2015년 3월 취임 시 본인을 대북 강경 매파도, 온건 비둘기파도 아닌 올빼미파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대북 압박과 봉쇄의 목소리에 스스로 묻혀 정작 미래를 준비하지는 못하고 있다. 김정은에게 돈을 조공(朝貢)처럼 퍼줘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북한 내부로 핵·경제 건설 병진 노선의 허상을 적극 알리고, 핵 포기 이후 대북 지원 청사진을 유입시켜야 한다. 통일 한반도 시대의 담론도 북한 주민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위기 국면에서도 대화 시도는 필요하고, 변화는 민중의 자각에서 시작된다. 통일부에서 올빼미들은 자취를 감췄다.

jk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