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은 ‘검은 정치자금 차단’
딸이 운영하는 쿠키점서 쓰고
마트 육류 구입하고 유흥비도

국회의원들이 국민으로부터 받는 정치후원금은 ‘명분’과 ‘도덕적 해이’라는 양가(兩價)성을 갖는 특권으로 꼽힌다. 검은 정치자금을 없앤다는 취지로 보면 명분이 있지만 실제 운용은 의정 활동이 아닌 개인 쌈짓돈이 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치후원금 모금이 쉽게 용돈을 버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며 법 개정을 통해 사용 내역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감시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19대 국회의원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2015년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보면 정치후원금을 사적으로 사용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거나 허위 기재한 흔적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K 전 의원은 딸이 운영하는 한 쿠키점에서 정치자금 192만 원을 결제한 뒤 간담회 등 명목으로 기재했다. 야당 K 의원은 남동생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직원들과 4차례 회식을 하고 300여만 원을 결제한 뒤 기자간담회를 한것으로 신고했다.

유흥비로 쓴 경우도 다수 발견됐다. 여당 K 전 의원은 양주 등을 파는 서울 여의도 비즈니스 바에서 11차례에 걸쳐 200여 만 원을, 또 다른 의원은 단란주점으로 등록된 노래방에서 15만 원을 정치자금으로 지출했다. 이밖에 약탕기나 고가의 안경을 구입하거나 향우회비·경조사비를 내고 집 근처 마트에서 고기를 사는 데도 정치자금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정치자금을 사적으로 사용(2조)하거나 허위 기재(37조)할 경우 각각 2년 이하 징역 또는 4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6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사적 사용과 허위 기재의 요건이 명확하지 않아 실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선관위는 구두 경고 조치 정도로 갈음하고 있다. 선관위는 관련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해 2013년 정치자금 등을 인터넷으로 상시 공개하는 내용을 포함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내놨지만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19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의원들은 1년에 1억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까지 정치후원금을 모을 수 있다. 국민들은 개인당 10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내면 연말 정산 때 전액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정치인에 돈을 기부한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후원금의 사적 이용을 막기 위해 그 사용 가능 범위를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사용 내역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민환 기자 yoogiz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