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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

베트남을 방문, 이른바 ‘쌀국수 외교’를 펴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은 23일 정상회담 후 채택한 ‘미-베트남 관계 현황 설명서’에 양국은 유엔 대북 제재 결의 제2270호의 전면 이행과 북한의 핵(核) 활동 차단을 위해 협력한다고 선언했다.

또, 오바마 대통령은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무기수출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베트남의 군사력을 강화해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임이 분명하다. 중국의 부상으로 주권과 영토 보전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베트남으로선 매우 반가운 선물이다. 동남아와 남중국해에서 팽창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이 양국의 국익이 합치하도록 만들고 있다. 지난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에 이은 이번 합의로 미국과 베트남 양국은 경제와 안보 두 측면에서 확실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할 수 있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하노이의 뉴스콘퍼런스에서 “한 세대 전 우리는 적(敵)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친구다”고 말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기까지 두 나라는 10년 간 전쟁을 했다. 미군 전사자만 5만8000명이 넘는 격렬한 전쟁이었다. 전후 20년이 지난 1995년, 두 나라는 국교를 정상화했고, 40주년이던 지난해에는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워싱턴을 방문했다. 국제관계에서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역사적 교훈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하다.

시야를 한반도로 돌려보자.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전승절 기념식에 참석했다. 박 대통령이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과 열병대에 나란히 선 모습은 세계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미국이나 일본의 정책 서클에서는 한국의 중국 경사론(傾斜論)이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동북아시아에서도 국가들 사이의 합종연횡이 언제든 재편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는 변수들이 매우 복잡하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 일본의 재무장, 북한의 핵 개발 등이 모두 중요한 독립변수들이면서 서로 얽혀 상호작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한편으로 주변 강대국들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유리한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고 민족통일을 이룩해야 하는 도전을 안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난과 압박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 개발과 미사일 기술 고도화를 척척 진행하고 있다. 이런 북한이 10년쯤 후 어떻게 돼 있을지 상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북한이 일부 학자들의 예측처럼 핵무기를 50개나 100개 정도 갖게 되고 잠수함 발사 미사일을 포함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충분히 발전시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국이 한국을 방위하려면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핵무기 공격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미국이 한국을 방위하려 하겠는가.

북한의 노림수는,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통해 자신들의 안전을 지킬 뿐 아니라 한미동맹을 이완시키고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중국과의 국익 공유를 바탕으로 북한의 도발을 저지하는 것이 대한민국 외교안보 전략의 최대 과제다. 우리 스스로 능력을 배가하고 주변국들과 이익을 지속적으로 공유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우리나라 편이 아무도 없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엄중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