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작업 중인 조선소 근로자 국내 한 조선소에서 근로자가 작업 중이다.[연합뉴스DB]

“월급 반토막났는데, 이마저 받을 수 있을까”…조선 하청사 근로자의 한숨
현대중공업 사내하도급 A씨 월평균 임금 ‘400만원→200만원’

조선소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무작정 울산으로 왔다. 15년 전 스물다섯 살 때다.

동구 현대중공업 앞에 월세방을 얻고 나서 설레는 마음으로 인력소개사무소 문을 두드렸다.

며칠 지나지 않아 인력소개사무소로부터 연락이 왔다. 현대중공업 사내 하도급업체에 다닐 수 있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어렵지 않게 직장을 잡았다.

선박 패널로 쓰이는 철판을 맞춰서 용접하는 일을 배웠다.

일이 손에 붙으면서 작업량도 늘어났다. 덩달아 일당도 올랐다.

그때는 작업물량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용접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철판이 들어왔다.

오전 8시 출근, 저녁 6시 퇴근이지만 집에 돌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전 10시, 어떤 날은 자정까지 용접기를 잡았다.

선박 건조 기일에 맞추기 위해 철야근무도 많이 했다. 오늘이 일요일인지, 월요인지 모를 정도로 바빴다.

동료들끼리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두 차례씩 토요일에 쉬었을 뿐이었다.

일이 많아 짜증도 났지만 일한 만큼 돈을 벌었다.

밤낮없이 일했더니 각종 세금을 제하고도 400만원 가까이 받았다.

‘40공수(40일 치 작업량을 30일 만에 해내는 것)’를 할 때에는 500만원 이상을 받기도 했다.

4년 전쯤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 하청업체로 직장을 옮겨서 파이프 용접을 했지만 역시 일감 걱정은 없었다.

아파트 10층 높이의 좁은 공간 안에서 용접해 번 돈으로 2008년 가정을 꾸렸다.

2010년 딸이 태어났고 5년 뒤 아들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2억5천만원짜리 아파트도 구입했다. 7천700만원을 대출받았지만 든든한 직장 덕분에 5∼6년 고생하면 은행 빚을 모두 갚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3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회사가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비교적 탄탄했던 회사여서 망할 줄은 몰랐다.

그때 마지막으로 월급 350만원 가량을 받았다. 그렇지만 퇴직금 900만원은 아직 못 받았다. 함께 울고 웃던 동료 150명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미지 크게보기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화 (울산=연합뉴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15년 동안 일한 A(40)씨의 안전화.

안전화 대신 운동화를 신고 바다로, 산으로 갔다. 아내 얼굴을 볼 낯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직업을 알아볼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배운 것이라곤 용접기술밖에 없어 포기했다.

그래도 그 기술 때문인지, 알고 지내던 사람 소개로 두 달이 채 안 돼 다시 다른 하청업체에서 일하게 됐다.

일을 다시 시작했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오전 8시에 출근하는 것은 같았지만, 퇴근 시간은 훨씬 앞당겨졌다. 오후 5시에 퇴근했다.

야근과 잔업이 없었다.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토요일에도 쉬었다. 일요일에 회사에 나오라는 얘기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일당은 많을 때가 15만원이어서 한 달에 18일 정도 일을 해서 250만∼27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장은 10%를 깎겠다고 했다. 회사 형편이 어려워 일당을 모두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화가 났지만 이 만큼 받는 것도 감지덕지할 따름이다.

매월 20만원 가량을 내야 하는 은행 대출 이자가 부담스러워졌다 아내는 장보기가 겁난다고 한다.

예전에는 쉬는 날이 없어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한 달에 2번 정도는 외식했는데 이제는 쉬는 날이 많아도 외식 한번 할 수 없다.

이 월급마저 못 받을 날이 올 수도 있다.

원청업체인 현대중공업이 3천명 가량을 정리해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청업체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해고될 것이다.

어떤 하청업체는 노동자들에게 ‘퇴직 확약서’를 돌리고 있다.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퇴사하겠다는 내용이다. ‘항복선언문’이나 마찬가지다.

조선업이 위기라는 뉴스가 나올 때마다 충청도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부모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어머니께서 생각하시는 것만큼 조선업계 사정이 그렇게 나쁘지 않아요.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을 지어낸 뒤 급하게 전화를 끊는다. 조선업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이 그리울 뿐이다.

※ 이 기사는 수주 하락으로 조선업계가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서 15년 동안 일한 A(40)씨와 진행한 인터뷰를 일기 형식을 빌려 쓴 것입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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