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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이것은 성장 중인 브라질 민주주의에 대한 쿠데타다.” “나는 실수는 했을지 몰라도 범죄는 저지르지 않았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에 대해 처벌받는 것보다 더 끔찍한 불의는 없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 12일 상원의 탄핵심판 결정으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자 보인 반응이다. 과연 그럴까? 호세프와 지지자들이 주장하듯이 탄핵이 2014년 대선 결과를 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뒤집으려는 음모의 결과일까?

우선, 탄핵 절차가 시작된 근거부터 살펴보자. 호세프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은 부정부패 혐의가 아니라, 그동안 관례상으로 받아들여져 온 ‘재정 변속(pedalada fiscal)’이라고 불리는 재정의 분식회계 때문이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브라질 정부는 국책은행을 통해 사회적 약자 등에게 직불금·보조금·융자금 등을 제공하는데, 정부가 국책은행에 넘길 예산의 집행을 지연시키면 국책은행은 어쩔 수 없이 일단 자체 자금으로 선집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정부가 국책은행으로부터 적법한 절차 없이 몰래 돈을 빌리는 셈이 되는데, 이렇게 하면 재정 상태를 실제 이상으로 양호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재정 집행 지연책은 2000년대 초부터 역대 정부가 공공연히 사용하던 재정회계 분식의 한 방법이었다.

관행이었지만 이것은 브라질의 ‘재정책임법’ 아래서 명백한 불법행위다. 그럼에도 이전에는 규모가 크지 않아 그냥 넘어갔다. 문제가 된 2014회계연도에는 재정 변속으로 인한 정부의 분식회계 규모가 187억 달러에 이르렀다. 결국, 브라질 연방회계법원이 정부 재정 결산에 대한 승인을 거부함으로써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2015년 브라질 집권 노동자당 핵심 설립자 중 1명을 포함해 3명의 법학자가 호세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신청서를 브라질 하원에 제출할 때에는 분식회계와 7억2500만 달러 상당의 불법 국채 발행 외에 부정부패도 이유로 들었으나, 나중에 부정부패 혐의로 자신도 물러나게 되는 하원의장이 부정부패 부분은 기각시키고 분식회계와 불법 국채 발행 혐의만 받아들여 탄핵 절차가 시작됐다.

처음 탄핵 절차가 시작될 때만 해도 대통령 직무정지까지 갈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규모가 천문학적이긴 하지만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오던 분식회계가 과연 대통령을 탄핵할 만큼 심각한 사유인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물론 경기침체로 고통을 받게 된 많은 브라질 국민이 분노하게 된 건 사실이지만, 이것은 브라질의 주 수출품인 1차 산품의 국제 가격이 폭락한 결과이지, 정부 정책의 잘못만도 아니었다.

게다가 탄핵을 주도하는 상하원 의원 대부분이 심각한 부패(腐敗) 혐의로 조사를 받는 상태였다. 이 가운데는 호세프 정부와 집권 노동자당의 신뢰와 도덕성에 먹칠을 한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뇌물 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는 의원도 여럿 포함돼 있었다. 그래서 지난 3월 중순까지만 해도 탄핵을 주도하는 세력들조차 결과를 알 수 없다고 밝히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페트로브라스 뇌물 사건에 연루돼 체포될 지경에 이르렀다. 체포를 피할 수 있게 호세프가 룰라를 민정수석 장관에 임명하려 하자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하지만 호세프의 운명을 결정지은 건 시장(市場)의 반응이었다. 따지고 보면 경기침체도, 부패도 호세프의 직접적인 책임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세계 경제 불황으로 인한 경기 붕괴를 두고 대통령의 책임만을 묻기는 어렵다. 비자금 문제도 20여 개의 정당이 이합집산하는 브라질에서 여러 정당과 정치적 연합을 유지하는 수단은 이 방법밖에 없을 수도 있다. 분식회계도 다 하던 건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탄핵절차가 시작되면서 시장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탄핵 기대감으로 1994년 이후 최저치로 폭락했던 헤알화(貨)가 반등을 시작하고 주식 가격도 가파르게 오르기 시작했다. 호세프 집권 이래 하락 일로에 있던 소비자신뢰지수와 산업신뢰지수도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장의 이런 움직임이 주저하던 탄핵 추진 세력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분식회계로 호세프는 2014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지만, 그 때문에 탄핵 지경에 이르렀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어도 빠져나갈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