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텅 빈 조선소 1일 경남 통영시에 위치한 한 중견 조선소의 독(dock)과 야적장이 일감이 없어 텅 비어 있다. 이 조선소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신규 수주가 뚝 끊겨 현재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 연합뉴스

韓銀 “충분하게 협의하자”
‘개입 신중론’서 방향 틀어

기재부도 “재정수단 검토”
‘압박’일관하다 입장 변화

경제위기속 충돌에 부담
통화·재정 정책조율 가닥

조선·해운 업종 구조조정 지원을 위한 국책은행의 자본 확충 방안을 둘러싸고 ‘정면충돌’ 양상을 빚었던 정부와 한국은행이 재정과 통화정책 수단을 조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각 기관의 입장만 내세우며 상대방에게 공을 넘기다 보면 내년 대선 전 8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기업 구조조정의 ‘골든 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를 수용한 모양새다. 이에 따라 기획재정부와 한은, 금융위원회 등이 오는 4일 개최하는 국책은행 자본확충을 위한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대체적인 방향이 잡힐 것으로 전망된다.

2일 기재부와 한은 등에 따르면 정부와 한은은 구조조정 재원 방안과 관련, “더 이상 외곽에서 공방을 벌이지 말고 협의체에서 각자 할 수 있는 방안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논의하자”고 이견을 조율했다. ‘국책은행 재원 확충은 기본적으로 재정의 역할’이라며 정부의 제안을 사실상 거부했던 한은과, ‘국가적 위험 요인 해소를 위해 한은이 적극 역할을 해달라’며 압박했던 정부가 재정·통화 정책 수단을 모두 강구한다는 선에서 접점을 찾은 것이다.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이다.

그동안 한은은 정부의 한은에 대한 ‘외곽 때리기’에 불만이 적지 않았다. 한은 관계자는 “산업은행의 코코본드(신종자본증권) 발행에 한은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은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며 그동안 한은과의 소통에 소극적이었던 정부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구체적인 협의보다는 한은에 무조건 참여하라는 식의 압박만을 가하는 상황에서 한은도 ‘원칙론’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달 19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회견에서 “기업 구조조정 지원을 하더라도 (한국은행)법 테두리 내에서 중앙은행 본연의 기본 원칙 내에서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 동원은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설사 구조조정이라는 ‘대의’를 위해 발권력을 사용하더라도 정당한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총재는 금통위 이후 정부는 물론 대통령까지 나서 ‘선별적 양적 완화’를 주장하며 한은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모양새에 대해 매우 불편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이날 집행간부회의 ‘당부 말씀’을 통해 “국책은행 자본확충 협의체에 참여해 관계기관과 추진 방안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그동안의 원칙론에서 ‘협의해보자’는 방향으로 ‘턴’한 것이다.

기재부와 금융위도 ‘구국 자본’(구조조정을 위한 국책은행 자본 확충)까지 거론하며 압박하다 한은 및 야당의 반발로 여론이 악화하는 조짐을 보이자 그동안 부정적이었던 재정 수단도 검토하겠다며 방향을 틀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일 “가능한 재정과 통화정책 수단의 조합을 생각해보고 있다”며 “딱 하나의 방법을 쓰기보다는 폴리시 믹스(policy mix·정책 조합)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은과 정부가 현실적으로 가장 빨리 쓸 수 있는 수단은 한국은행법 개정 없이 가능한 수출입은행 출자와 산업은행이 발행한 코코본드를 한은이 시장에서 사주는 방법이 있다고 지적한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추경)보다는 지난해 쓰고 남은 돈인 세계잉여금이나 정부가 갖고 있는 공기업 주식 등을 산은에 현물 출자하는 방법 등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 구조조정 진행 과정에서 자금 규모가 더 늘어날 수 있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는 국회 동의 등을 거쳐 한국은행법과 산업은행법을 고쳐 안정적으로 구조조정 자금을 공급할 필요가 있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또 추가 구조조정 자금 소요에 대해 내년도 예산에 반영해 국회 심의를 받는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김충남·박수진 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