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아름답고 희귀한 보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인류 역사를 움직이는 드라마틱한 동인이 되기도 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보석 천 개의 유혹 / 에이자 레이든 지음, 이가영 옮김 / 다른

인간의 욕망은 때로 비합리적이다. 보석에 대한 열망도 마찬가지다. 욕망을 이해하는 쪽에서 본다면 보석이야말로 물질로 환원된 기호와 상징이다. 보석은 그 자체보다는, 희귀함이라는 속성으로 부와 권력 혹은 성공을 타자에게 드러내는 쓸모있는 도구인 것이다. 그러니 보석을 소유하고 있다는 건 아름다운 장식을 가진다는 것 이상의 의미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보면 보석은 광물과 금속의 일종일 뿐이다. 희귀하다고는 하지만, 왜 사람들은 기를 쓰고 값비싼 광물을 가지려고 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욕망은 논리적인 설명이 거의 불가능하며 생물학적인 충동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1625년 5월 4일,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약 24달러어치의 구슬, 단추, 장신구 따위를 받고 맨해튼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게 넘겼다.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식민지 제국이 순진한 원주민들에게 사기를 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당시 유리구슬은 지금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한 물건이었다. 구슬은 보기에 예뻤을 뿐 아니라 유럽을 벗어나면 희귀한 상품이 됐다. 실제로 16∼17세기에 구슬은 귀중품이었고 모든 곳에서 화폐처럼 통용됐다. 그러니 유리 제작 기술이 없는 신대륙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유리구슬은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한 보물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보석에 대한 갈망과 욕망은 300여 년 전 원주민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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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보석디자이너 에이자 레이든의 ‘보석 천 개의 유혹’은 보석에 얽힌 욕망의 세계사이다. 화려한 보석과 그 보석을 가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소유 혹은 갈망과 탐욕으로 벌어졌던 사건들이 펼쳐진다.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다이아몬드 회사 드비어스가 잇따른 다이아몬드 광산 발견으로 더 이상 희귀하지 않게 된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를 분석하는 부분이다.

다이아몬드는 과거에는 희귀한 보석이었으나, 1872년부터 한 해 생산량이 그 이전까지 채굴된 전체 다이아몬드 양의 다섯 배에 이를 정도로 폭증했다. 드비어스는 생산량 감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광산이 계속 발견되자, 더 이상 희귀성이란 가치로 다이아몬드 값을 떠받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온 전략이 바로 다이아몬드가 ‘희귀해서’가 아니라 ‘꼭 필요해서’ 갖고 싶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보석의 가격을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아름다움이나 크기, 품질이 아니라 희소성이다. 사람들이 보석을 가지지 못해 안달하는 이유는 보석이 아주 희귀한 돌이기 때문이다. 보석은 우리에게 소수만 가지고 있거나 아무도 가지지 못한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도취감을 준다. 하지만 드비어스는 역사적 인물의 구애를 스토리로 만들어 다이아몬드 반지와 연결하고, 다이아몬드의 단단하다는 특성에 ‘영원불멸’의 이미지를 포장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캐낸 다이아몬드가 전 세계 70억 인구에게 0.5캐럿 반지를 하나씩 나눠줘도 남을만큼 흔전만전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비싼 돈을 내고 다이아몬드를 사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에메랄드와 에스파냐 왕조의 종말을 연결하고,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마리 앙투아네트에 얽힌 프랑스 혁명의 뒷얘기를 들려준다. 자국의 해적을 앞세워 에스파냐 배에서 진주를 약탈하길 원했던 여왕 덕에 대영제국의 황금기가 열렸다는 이야기며, 진주를 대량생산해 역사상 최초로 보석을 대중화시킨 일본인 미키모토의 이야기 등도 흥미롭게 들려준다. 성공한 자본가 아먼드 해머(1898∼1990)가 러시아 황실의 부활절 달걀을 몰락한 왕조에 대한 애잔한 감상을 앞세워 미국 중산층에게 팔고 이를 통해 번 돈을 옛 소련을 지원하는 자금으로 송금한 이야기도 전한다.

저자의 결론은 진짜 ‘보석’은 땅속이나 실험실이 아닌 인간의 마음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보석이 지닌 단 한 가지 본질이자 목적은 우리의 욕망을 반사해 다시 우리에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준다는 얘기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의 말과 다르지 않다.

박경일 기자 parki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