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收藏庫)를 열어젖히겠다.” 지난달 새로 부임한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의 말입니다. 38만여 점의 유물이 보관돼 있는 중앙박물관 수장고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그동안 출입이 엄격히 제한됐습니다. 지광국사 현묘탑(국보 제101호) 사자상 논란(문화일보 3월 23일자 37면 참조)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가장 폐쇄적인 공간을 개방해 박물관 이미지를 개선한다는 의도입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한발 앞섰습니다. 고궁박물관은 4만5000여 점의 왕실유물이 잠들어 있는 수장고를 연 4회 일반에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전시된 유물이 1600여 점이니, 28배나 많은 유물이 보관돼 있는 셈이지요. 이미 지난 3월 30일 10여 명의 관람객이 ‘수장고 투어’를 마쳤습니다.

박물관의 정보 공유 방식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 이번 수장고 개방 이벤트는 많은 관심을 끌었지만, 온·습도 조절 첨단시설과 유물 도난 방지 장치 등 수장고 시스템 자체를 관람하는 일은 정보 공개와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마치 도서관에 들어가 책장만 보았을 뿐, 어떤 책이 있는지 못 본 것과 같지요. 또한, 오래된 유물은 작은 입김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무조건 ‘열린’ 박물관을 지향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요.

정보 공개라는 큰 흐름을 따라 수장고를 열어야 한다면 ‘개방형 수장고’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개방형 수장고는 1976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인류학박물관에서 처음 도입한 개념으로 보관·보존이라는 수장고의 본래 역할에 전시와 활용 기능을 더했습니다. 소수의 ‘주요’ 소장품을 보여주는 일반 전시와는 전혀 다른 형태죠.

박물관 전시에 활용되는 수장품의 비율은 보통 전체의 5%에 불과합니다. 해외 박물관들은 밀도 있는 전시를 위해 개방형 수장고를 일찌감치 도입했는데요. 김정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영국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미술관의 경우, 도자 전시에 개방형 수장고를 활용해 전시 유물을 3000여 점에서 2만6000여 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프랑스 루브르, 미국 스미스소니언·메트로폴리탄, 영국 자연사·대영박물관이 개방형 수장고를 운영하는 대표적인 기관이고요, 뉴욕 구겐하임도 수장 기능을 갖춘 컬렉션 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물론 정보 공유가 반드시 수장고를 열어야 가능한 건 아닙니다. 유물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베이스(DB)만 구축해 공개했더라면, 현묘탑 사자상은 보다 빨리 수장고 밖을 나왔을 테지요. 국립박물관들은 2014년 5% 미만에 불과했던 정보공개율을 2017년까지 90% 이상으로 높인다는 방침이지만, 진척 사항은 아직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중앙박물관은 38만 점의 유물 중 1만2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는데요. 홈페이지에서는 7600여 점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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