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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사진작가 케빈 카터는 지난 1993년 아프리카 수단에서 찍은 ‘수단, 아이를 기다리는 게임’이라는 사진으로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당시 카터는 내전 중이던 수단의 한 마을에서 시체를 먹는 새 콘도르가 어린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러나 카터는 수상 후 “사진을 찍기 전에 아이를 구했느냐, 지금 소녀는 살아 있느냐”는 등의 비난에 시달렸다. 이 이야기는 생태사진이든 보도사진이든 사진의 윤리를 따질 때 가장 많이 인용된다.

촬영에 방해된다며 산림보호구역에서 수령 200년이 넘는 금강송을 베어낸 사진작가의 전시회가 법정 공방 끝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게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6일 사진작가 장국현 씨의 사진전을 열려는 잡지사 ‘미술과 비평’이 예술의전당을 상대로 낸 ‘전시회 방해금지 가처분’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예술의전당은 오는 11일부터 26일까지 ‘천하걸작 한국영송 장국현 사진전’(포스터)의 준비 및 전시를 방해해선 안 된다.

장 씨는 2011∼2013년 경북 울진군 산림보호구역에서 세 차례에 걸쳐 수령 220년이 된 금강송 등 금강송 11그루와 활엽수 14그루를 무단 벌목(산림보호법 위반)해 2014년 대구지법 영덕지원에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대왕송 사진을 찍으려는 데 구도를 해친다며 인부를 고용해 주변 금강송 등을 베어냈다. 그의 행위는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불렀고 한국사진작가협회는 그를 제명했다. 이 같은 전력에도 불구하고 ‘미술과 비평’은 4월에 장 씨의 사진전을 열기로 하고 예술의전당과 대관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뒤늦게 장 씨의 전력을 알게 된 예술의전당은 지난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작가의 전시는 불가능하다”며 대관 취소를 통보했고, ‘미술과 비평’은 이에 불복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얼마 전엔 경기 안산 대부도 간척지 바위 절벽 중턱의 수리부엉이 둥지가 훼손돼 충격을 준 적이 있다. 멸종보호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를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둥지 주변의 나무와 덩굴 등 은폐물을 모두 없애며 천적에 고스란히 노출된 새끼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됐다.

‘생명의 존엄성을 지킬 것인가, 예술성을 추구할 것인가’는 사람이건, 동식물이건 생명체를 촬영할 때 사진작가들에게 항상 따르는 딜레마다. 그러나 생명을 경시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사진이라도 작품성이 뛰어나면 괜찮은 것일까? 재판부는 “대관 규약상 해당 사유만으로는 예술의전당이 계약을 취소할 권한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이어 “미술과 비평이 상당한 금원을 투자해 전시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개최가 무산될 경우 큰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야생조류 사진작가 조승호 씨는 “개인의 자유, 취미활동도 중요하지만, 생명과의 공존에도 신경 써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에 법적·경제적 논리로만 판단해 전시를 허락했다는 사실이 의아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예술의전당 측은 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만큼 애초의 대관 계약을 지킬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경택 기자 kt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