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 쿠바 88년만에 정상회담
양국 핵심현안엔 입장차 여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88년 만에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간 관계 회복과 새로운 실용주의적 외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러나 두 정상은 금수조치 해제와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 인권문제를 두고 팽팽한 대결을 벌였다.

21일 AP 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과 카스트로 의장은 이날 아바나 혁명궁전에서 두 시간 넘게 단독 및 확대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과거 적대적이었던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화해의 새 시대를 열자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스페인어를 함께 쓰며 “오늘은 양국 관계에 새로운 날(nuevo dia)”이라며 역사적인 정상회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두 정상은 양국 관계의 핵심 현안을 두고는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50년 넘게 유지하고 있는 대(對)쿠바 금수조치에 대해 “이는 미국과 쿠바인들에 이익이 되지 않는 조치이기 때문에 일정 시점에서 종료될 것이지만 정확한 시기를 예측하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미국은 쿠바 내 미국 자산 국유화, 쿠바의 사회주의 표방, 쿠바 미사일 위기 등으로 1962년 3월부터 금수조치를 단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미국 의회가 얼마나 빨리 금수조치를 해제할지는 쿠바 정부가 인권문제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미국 정부는 쿠바의 민주주의와 인권 개선을 위해 계속 목소리를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카스트로 의장은 이에 대해 “만일 쿠바에 정치범이 있다면 명단을 제시해 보라”며 “정치범이 존재한다면 나는 오늘 밤 안으로 석방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우리는 인권과 관련한 정치적 조작에 반대한다”며 “정부를 불안하게 하는 미국 첩자들의 활동은 규제하지만, 국민을 위해 무상 의료보험과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인권을 수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이 반대하고 있는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문제에 대해 기자회견 동안 두 차례 언급하며 “금수조치 해제와 함께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 방문 2일 차를 맞아 스페인에 맞선 쿠바의 독립영웅 호세 마르티 기념관에 헌화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념관 방명록에 “모국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던진 마르티에게 헌화하는 것은 대단한 영광이며 해방, 자유를 향한 그의 열정은 오늘날 쿠바인들의 가슴에 살아 있다”고 적었다.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마르티는 19세기 스페인 식민지 시절 독립을 이끌어 쿠바 국민에게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이날 건강 문제로 만남이 불발된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나고 싶다는 의향을 밝히기도 했다.

한편 반정부 인사들은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국빈 방문 기간에 자택에 머물도록 종용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대종 기자 bigpaper@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