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송재우 기자 jaewoo@

① 韓 기술인력 유출

국내 연구원 거액연봉 미끼로 스카우트
기술만 빼앗고 ‘토사구팽’내쫓는 경우도

中‘파격제안’에 환상 사로잡힌 연구원들
회사 개발 기술에 ‘자기 지분 있다’ 착각
현지취업이후 동료·후배까지 끌어오기도

“국내 한 대기업 연구원들을 중국에 취업시킨 헤드헌트 업체를 압수수색 했더니 담당별, 파트별로 연구원이 누구인지 내용이 모두 담긴 연구원의 세세한 조직도를 다 가지고 있어 깜짝 놀랐어요.” 중국업체에 취업해 국내 A사 로봇청소기 기술을 유출한 사건을 수사했던 경남지방경찰청의 김병학 팀장은 21일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연구인력을 빼내려는 중국의 스카우트가 치밀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대중 인력 스카우트에 나선 헤드헌터라면 웬만한 대기업 연구원들의 조직도쯤은 모두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한국에서 사건수사에 들어갔더니 중국 업체들이 한국에서 빼간 연구원들을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전환시켜 언제든지 해고할 수 있게 했다”면서 “국제소송에 대비한 조치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중국 업체들의 한국 인력 빼가기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술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올레드)분야를 중심으로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문화일보 취재결과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비즈니스 인맥 네트워크 사이트인 ‘링크트인’을 통해서도 국내 반도체 인력 상당수가 중국 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사실이 파악되고 있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헤드헌터들이 우리 연구인력들의 인재 풀(pool)을 확보한 것은 기본이고, 옵션으로 특정 인력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이제 웬만한 기술은 중국이 다 따라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국이 앞서 있는 반도체와 올레드에 타깃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중국이 반도체 분야에 특급 대우를 받는 S급 인재에게 준다는 ‘1-9-5(1년 치 연봉의 9배를 5년간 보장), 1-3-5(1년 치 연봉의 3배를 5년간 보장)’ 등의 대우가 일부지만 존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보통의 연구원들은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고 있었고, 중국에 기술만 뺏기고 ‘토사구팽’당해 돌아온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이미 회사에 사표를 낸 상황에서 중국 업체로 가려다 조건이 안 맞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경우도 간혹 있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국으로 이직한 연구원들도 최근에는 이용만 당하고 조기 해고될 것을 염두에 두고 기술을 천천히 넘겨주는 등 속도 조절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사정 당국 관계자의 전언이다.

올레드 분야 전문 인력에 대한 중국 영입 공세는 이미 우리나라가 세계 정상급의 기술을 확보하기 시작한 200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업계에 따르면 2010∼2012년에 BOE 등 중국 디스플레이업체들은 삼성, LG 등 해당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연구원을 대상으로 5억∼9억 원 이상의 연봉 인상안을 들고 적극적인 스카우트에 나섰다는 후문이다. 중국 업체들은 특히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 희망퇴직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노리고 핵심 인력들에 이직을 권했고 이들은 우리나라 동종 업계에서 이직할 수 없다는 점에 쉽게 흔들렸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재 삼성과 LG의 올레드 전문가의 경우 연봉의 2~3배에 주거비, 학비, 통신비를 지원하는 게 보통”이라며 “BOE, CSOT, Tianma 등 중국 주요 디스플레이 업체는 한국 출신 엔지니어들이 엄청나게 많다”고 전했다.

기술경쟁을 벌이는 중국 업체에 취업하거나 기술을 넘기는 현재 상황을 전문가들은 ‘동기’,‘기회’,‘합리화’ 3가지 요소가 결합하면 범죄가 발생한다는 범죄학의 ‘부정 삼각형’ 이론에 딱 들어맞는 환경이라고 지적한다.

이상노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교육홍보팀장은 “일단 동기 면에서 자기 연봉의 7배에서, 최대 9배까지 주는 조건들이 제시되면 흔들릴 수밖에 없고, 국내에선 실제 적발이 되더라도, 1년에 9억 원씩 받으면 3년이면 27억 원이나 되기 때문에 1년 정도 징역을 살고 나와도 남는 장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기회’에 해당한다. 그래서 범죄 억지 효과는 적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개발한 기술에 자기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화’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중국 업체들의 제안에 환상에 사로잡혀 들뜬 연구원들도 적지 않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국업체들이 제안하기 전에 연구원들이 자발적으로 헤드헌터를 찾아 나서거나 현지에서 취직한 연구원들이 후배나 동료를 데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의 임원을 지낸 한 대학교수는 “빠른 기술 발전 속도로 인해 중국으로 옮겨 간 우리나라 연구 인력들이 2∼3년 후 ‘팽’당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면서 ‘엑소더스’현상이 다소 줄긴 했지만, 최근엔 현지 업체의 이미지 관리 덕분에 유혹의 강도가 다시 커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소개했다.

중국은 이미 스마트폰 핵심 부품 반도체 연구인력은 물론, 디자인 인력 스카우트에도 공을 들여왔다. 2012년에 화웨이로 넘어간 삼성전자 출신의 김준서 디자인 총괄 사장이 대표적인 예다.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P8, 넥서스6 등은 세계시장에서 호평받고 있다. 화웨이 외에도 메이주, ZTE, 샤오미 등도 한국인 인력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승배·이근평·윤정선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