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베이징 간 라가르드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서 장가오리(오른쪽 두 번째) 중국 부총리가 크리스틴 라가르드(왼쪽)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헨리 키신저(왼쪽 두 번째) 전 미국 국무장관을 자리로 안내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선진국들 ‘강력 대응’
日서도 3억엔 배상 사례

국내 고급 인력과 기술의 유출에 대해 현행보다 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게 일고 있다. 경업금지(競業禁止·특수 관계에 있는 사람이 그것과 경쟁적인 성질을 가지는 영업 행위를 금지하는 것) 약정이 사문화되다시피 한 데다, 형사법상 처벌 역시 솜방망이에 그치고 있는 만큼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구체적인 계약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1일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올레드) 등 첨단 기술 업계에 따르면 ‘있으나 마나’ 한 신세로 전락한 우리나라의 기술 유출 관련 법·제도는 미국 등 선진국의 날이 갈수록 강력해지는 보호책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현재 국내에선 영업 기밀을 함부로 빼돌리지 못하도록 형법상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법’(부경법)이 엄연히 존재하고, 퇴직한 직원들이 1~3년간 동종 업계 이직을 할 수 없도록 업계 차원의 경업금지 계약이 맺어지고 있으나 적용이 까다롭다.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또는 민법 제103조(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하는 법률행위 금지)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쉬운 데다, ‘기술 유출에 따른 금전적 손해’ 등을 법정에서 입증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체 특별법 중 부경법 기소율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등 처벌의 첫 단추부터 솜방망이로 전락하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부경법 기소율은 2014년 22.8%로 50%를 웃도는 전체 특별법 기소율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참고해 구체적인 계약과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1996년 ‘경제스파이법’을 제정한 이후에도 첨단기술 유출이 지속되자 2012년 미국 하원이 나서 해당 법을 개정, 형사 처벌을 강화했다. 경제스파이로 검거될 경우 벌금은 50만 달러 이하에서 500만 달러(약 58억4000만 원) 이하로 높아졌고, 15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했다. 민사상 영업비밀의 가치를 감정인을 통해 산정한 뒤 유출 피해액의 3배를 부과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도입했다.

실제 미국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와 미 사법당국은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에 대한 대처 수준을 높이고 있다. 2012년 10월 미 의회 하원정보위원회는 CFIUS의 권고를 토대로 중국 스마트폰 및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와 ZTE의 미국 내 투자를 승인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 법원은 방산업체 계약업자인 중국인이 2013년 3월 미사일 유도시스템, 무인항공기, 항공기술 등 방산 기밀을 불법 유출한 데에 대해 징역 70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일본 역시 유출자가 영업비밀 유출을 시도하기만 해도 미수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등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을 뿐 아니라 천문학적인 손해배상도 인정하고 있다. 2011년 PC 설계도면을 중국 란싱(藍星) 사에 넘긴 이데미쓰(出光) 사의 종업원에게 3억 엔(약 31억5000만 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도 사회적으로 ‘핵심 기술은 공동체 자본’이라는 확고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출 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며 “업계 차원에서도 퇴사 후 특정 기간 동안 어떤 업무를 하면 안 되는지 적확하게 명시하는 ‘퇴직 윤리서약’을 만드는 등 기술 유출 사전 예방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