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朴壽根·1914∼1965)의 이름 앞에는 ‘민족의 화가’ ‘서민적 체취의 화가’ ‘우리의 화가’라는 말이 항상 접두어처럼 따라다닌다. 이러한 수식어는 그의 삶과 예술을 가장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인 동시에 박수근 회화의 본령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박수근은 우리 민족이 질곡의 나날을 보내며 가장 어려웠던 시절, 끈질긴 생명력으로 이 땅을 지켜온 서민들의 삶의 모습, 삶의 이야기를 자신의 독특하며 투박하고 질박한 마티에르와 단색조 화면을 통해 성공적으로 그려냈다.

박수근이 작가로 출발한 1932년을 기점으로 자신의 화풍을 완성해 나간 기간은 33년이며 그가 본격적으로 그림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기만 따지면 약 12년에 불과하다. 초기에는 구상성을 바탕으로 대상의 재현보다는 조심스럽게 대상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고 접근함으로써 사물의 외형을 지키면서 자신의 화풍을 정립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나이프를 이용한 터치의 중첩을 활용해서 마티에르를 통해 화면에 침윤되어 있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어렵고 지난한 삶을 숙명적으로 수용하면서 역사적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여기서 그는 철저하게 어려운 삶의 현장을 목격하고 기록하는 화가의 역할을 견지한다. 그리고 그는 늘 그곳에 있었고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작품은 참담한 현실에 대해 분노하기보다 더 생생하게 당시의 삶을 읽을 수 있도록 해 준다.

그의 말년작업은 1963년에 들어서면서 완전하게 대상과 화면이 일체를 이룬다. 대상이 화면의 바탕에 녹아들면서 서로 분리해 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체감을 보여주게 된다. 짧은 시간에 열정만으로 몸과 눈을 혹사시켜가며 노동에 가까운 작업으로 오늘의 자신을 이룬 것이다. 박수근 그림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는 일체의 입체감과 원근법을 무시한 ‘전면성·평면성의 회화’ 기법은 이렇게 운명적으로 완성된다.

그의 작품은 화강석 바위 같은 마티에르와 여기에 새긴 것처럼 그려진 형태가 이루어내는 ‘불가원 불가근’의 관계를 적확하게 드러낸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굳이 한국적이라 하지 않아도 필경 한국적일 수밖에 없는 작품으로 영원히 남게 됐다.

정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