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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 언니’를 넘어 ‘가모장(家母長)’ 캐릭터가 예능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가상 커플의 부부생활을 다룬 종합편성채널 JTBC ‘님과 함께 시즌2-최고의 사랑’(최고의 사랑)에 출연 중인 개그우먼 김숙(왼쪽 사진)-개그맨 윤정수 커플은 요즘 가장 주목받는 가상 부부다. 이 커플을 보는 재미는 ‘관계 역전’이다. 실제로 개인 파산된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윤정수를 향해 김숙은 “남자 목소리가 담장 밖을 넘어가면 패가망신한다”고 꾸짖는다. 돈은 알아서 벌어올 테니 집에서 조신하게 살림을 하고 목소리를 낮추라는 것이다.

여성 시청자들은 김숙의 호통에 열광한다. 실제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올라갔으나 가정 안에서는 여전히 ‘여성다운 삶’을 강요받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기기 때문이다. 김숙이 펴놓은 우산 아래서 박나래, 장도연 등 후배 개그우먼 역시 평소 흠모하는 남성 연예인들에게 스스럼없이 애정을 드러내며 “누나만 믿으라”고 말한다.

이는 K-팝 시장에서 소위 ‘센 언니’라 불리는 여성 가수들이 여성팬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걸 크러시’(girl crush·여성이 여성을 좋아하고 따르는 현상)와 일맥상통한다. 걸그룹 포미닛과 마마무, 래퍼 제시와 유빈 등이 ‘할 말은 하는 가수’로 통하는, 걸 크러시의 선두주자다.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하고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 직격탄을 날리는 가사와 성별 구분이 힘든 젠더리스(genderless) 패션은 걸 크러시의 상징이다. 대학생 김소영(20) 씨는 “가모장을 부르짖는 여성 예능인이나 센 언니로 불리는 여가수들을 보고 있으면 대리만족을 느낀다”며 “내가 차마 하지 못하는 표현을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보며 동경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는 한동안 예능 시장에서 사라졌던 ‘여성 예능’까지 부활시켰다. KBS 2TV는 새 예능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어른들의 장래희망’(가제)을 준비 중이다. 케이블채널 tvN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골목길을 휘어잡는 치타 여사를 연기하고, 실제로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배우 라미란(오른쪽)을 맏언니 삼아 김숙, 제시, 홍진경 등 검증된 센 언니들이 포진한다.

현재 여성들이 주축이 되거나 메인 MC를 맡는 프로그램은 찾아보기 힘들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비롯해 육아 예능, 쿡방도 남성들의 잔치다. 입담이 센 웬만한 여성 연예인들도 일회성 게스트로 소비되고 만다.

KBS 예능국 관계자는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육아와 요리를 남성에게 맡긴다는 발상의 전환이 육아 예능과 쿡방의 시대를 만들었듯, 섹시함이나 청순함이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벗어던진 가모장 캐릭터나 센 언니 같은 화제가 주목받는 시기가 온 것”이라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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