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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결혼이요? 예능으로 배우고 있어요.”

직장인 안지희(33) 씨는 자취 생활 3년차다. 부모님과 함께 살다 분가 후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그는 “결혼 문제로 부모님과 마찰이 잦았는데 자취를 시작한 후에는 오히려 더 자주 찾아뵙고 애틋해졌다”며 “집 꾸미고 취미 생활을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한다.

안 씨가 꼭 챙겨보는 예능프로그램은 MBC ‘나 혼자 산다’(사진)와 JTBC ‘님과 함께 시즌2-최고의 사랑’(최고의 사랑)이다. “‘나 혼자 산다’ 속 싱글들의 삶을 보며 동질감을 얻고, ‘최고의 사랑’으로 결혼 생활을 간접 체험한다”고 말한다.

안 씨와 같은 1인 가구의 국내 비율은 지난해 기준 전체 가구 중 25%. 네 가구 중 한 가구가 혼자 산다. 2013년 3월 첫선을 보인 ‘나 혼자 산다’가 숱한 싱글 연예인들의 삶을 조명하며 3년 넘게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다. 채널A ‘개밥 주는 남자’ 역시 반려견을 키우며 홀로 사는 이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최고의 사랑’이나 ‘우리 결혼했어요’와 같은 가상 부부의 삶이 1인 가구들에게 결혼하고 싶은 충동을 주진 않을까. 실상은 반대다. 예능은 예능일 뿐, 결혼한 친구나 동료들이 말하는 결혼과는 괴리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싱글들에게 가상 부부 예능은 ‘워너비 커플’일 뿐이다.

최근 방송가를 장악한 ‘쿡방’ 역시 기존 요리 프로그램과는 궤를 달리한다. 쿡방 열풍의 선두주자인 백종원은 케이블채널 tvN ‘집밥 백선생’에서 초간단 레시피를 전달한다. 냄새가 나고 손질하기 번거로워 생선을 기피하는 이들에게 주저 없이 “통조림을 쓰라”고 권한다. 설탕과 조미료를 거리낌없이 넣으면서 ‘건강’보다는 ‘맛’을 먼저 이야기한다. 웰빙을 추구하기보다는 굶지 않고 세끼를 맛있게 챙겨 먹는 것이 더 중요한 싱글족들의 귀가 솔깃할 만큼 솔직한 조언이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만들면 항상 재료가 남아 버리기 일쑤인 싱글들에게 냉장고의 남은 재료로 단 15분 만에 뚝딱 요리를 만드는 ‘냉장고를 부탁해’는 맞춤형 콘텐츠다.

한동안 대한민국의 화두는 ‘웰빙’이었다.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강조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리 여유롭지 않다. 홀로 사는 싱글족에겐 더욱 그렇다. 그래서 패스트 라이프(fast life)에 초점을 맞춘 ‘집밥 백선생’이나 ‘냉장고를 부탁해’가 인기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진이나 게스트는 대부분 싱글족이거나 ‘기러기 아빠’ ‘돌싱’이라는 점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는 단어 그대로 ‘대중’의 삶을 반영한다. 싱글족이 많아지니 그들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이 제작되고, 이 프로그램이 다시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