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정체 철저히 숨겼지만 이세돌 기보는 모두 확보해”

다른 게임 대결 방식과 달라… 전문가 “불공정 계약 가능성”

법조계 정보기술(IT) 전문가들은 이세돌 9단과 대결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시스템이 지금까지 체스 등 다른 게임에 적용됐던 방식과 다르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클라우드 시스템으로 연결된 알파고는 슈퍼컴퓨터 1대의 계산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한 이 9단 측에서 불공정 계약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한국 기원 측은 구글 측에 알파고 관련 정보를 대국 전에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민구 부산지법원장은 11일 이 9단과 한국기원 측이 알파고가 기존에 했던 체스 대결 방식으로 인식했다면 불공정 계약으로 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강 원장은 “보도에 의하면 이 9단이 제안을 받은 지 5분 만에 대결을 받아들였다고 한다”면서 “알파고의 시스템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계약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니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구글은 아마도 100억 원 또는 1000억 원의 대국료를 이 9단 측이 제시했더라도 계약을 체결했을 것”이라며 “전문 법률가 집단과 IT 전문가 집단이 이 계약에 개입해 한 회당 100억 원 이상 정도의 대국료를 산정했어야 하는데 무조건 이긴다는 착각 아래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이 9단의 2연패로 충격에 빠진 한국기원의 양재호 사무총장은 이날 “알파고는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있지만, 이미 공개된 이 9단의 모든 기보를 확보하고 있다”며 “이 9단은 자신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는 상대와 싸워야 한다. 이는 페어플레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프로기사 9단인 양 총장도 이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심각한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기원은 이번 대국에 앞서 알파고에 관한 정보를 더 알아야겠다고 판단, 이하진 국제바둑연맹(IGF) 사무국장을 통해 구글 딥마인드에 알파고 관련 정보를 요청하기도 했다. 알파고의 연습 기보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알파고와 다른 한국 프로기사의 연습 대국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기원이 공개서한을 보낸 것은 아니었고, 구글 딥마인드 담당자는 구두로 “안 된다”는 뜻만 전달했다.

양 총장은 “바둑 기사는 승부사다. 지고서 변명하기를 싫어한다. 이 9단도 승부사로서 이번 대국의 결과를 승복할 것”이라면서도 “한국 바둑을 대표하는 한국기원은 문제점이 있으면 지적하고 의사 표현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병채·이후연 기자 haass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