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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 / 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추진 과정에서부터 많은 논란을 빚은 성남시의 ‘청년배당제’가 시행 며칠 만에 더 큰 논란에 빠졌다. 청년들에게 1인당 12만5000원어치씩 지급한 ‘성남사랑상품권’이 인터넷 중고 카페에서 액면가의 70~80%대의 속칭 ‘깡’한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청년들의 복지 향상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에서 출발한 이 제도가 이젠 청년들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역효과만 내고 ‘복지의 실패’로 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성남시 청년배당 정책의 골자는 ‘구직 역량’ 강화를 지원하기 위해 성남시에 3년 이상 거주한 19~24세 사이의 모든 청년에게 분기별 25만 원씩 연 100만 원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 정책의 첫 적용으로 24세 1만1300여 명 전원에게 상품권을 지급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책의 설계를 보면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구직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설계된 정책이 소득 수준이나 취업 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청년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좋은 복지정책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대상 효율성’이다. 정책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원 대상을 얼마나 적합하게 선정하고 또 선정된 대상에 지원을 집중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대상 효율성이다. 좋은 직장에 취업해 소득 수준이 높은 청년도 ‘구직 역량’ 강화 지원을 받게 하는 정책은 대상 효율성이 낮은, 바람직하지 않은 복지정책이다.

청년고용정책으로 현금을 무차별하게 지급한다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점이다. 고용정책 영역에서 ‘현금’보다는 질 좋은 교육·훈련 프로그램이 효과적이라는 것은 외국 사례를 통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성남시의 경우도 취업 지원이 절실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집중 지원하는 게 사업 목적에 맞다. 정책의 취지는 청년고용을 위한 ‘사회적 투자’로 포장됐지만, 투자의 방식이 별로 효과가 없다는 점이 문제다. 이런 식으로 1년에 50만 원씩 모두에게 지급하는 ‘배당’이 과연 공짜로 생긴 용돈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성남시에서는 그런 비판을 의식한 듯 ‘현금’이 아니라 ‘상품권’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것도 문제다. 상품권을 받은 사람이 그 상품권을 써야 하는 곳에 대해 별로 필요성을 못 느끼면 그 상품권을 액면가보다 낮은 가격에라도 되팔아 자신이 꼭 필요한 구매를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이다. 상품권을 지급한 쪽은 투입한 금액의 누수가 생기는 것이고, 상품권을 ‘깡’하는 쪽은 도덕적 해이를 경험한다. 제도의 정합성이 낮은 정책은 이래저래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복지정책으로는 원점부터 문제가 많았던 것이 강행된 것이기 때문에 성남시의 청년배당 정책은 ‘복지’라기보다는 ‘정치’ 문제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 시점도 곧 다가올 총선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다. 최근 선거 때마다 표심(票心)잡기 차원에서 확대된 ‘무상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이번엔 ‘청년배당’으로 연결될까 우려된다. 정책의 목표와 제도의 정합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차별적 인기 영합식의 복지정책은 궁극적으로는 우리 모두에게 부담으로 돌아오는 ‘나쁜’ 복지정책이다.

상품권의 현금화 문제가 발생하자 성남시는 다음 분기부터는 전자카드를 지급하겠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문제의 핵심을 외면한 임기응변적인 해결책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의 청년배당 정책을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