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1월 28일 충남 아산시 외암마을 저잣거리 장터에 마련된 김장 담그기 체험 현장에서 주민이 만들어 준 김치를 한 학생이 맛보고 있다. 김선규 기자 ufokim@

340명 기차타고 체험 여행
다섯 살짜리가 속 집어넣고
4학년 오빠 김치맛에 ‘홀딱’

흥겨운 풍선·버블쇼 즐기고
계란꾸러미·짚공예 만들기도

마을 장터 저잣거리에 매콤한 김치 향이 그득했다. 대형 텐트 아래에서는 왁자지껄 340여 명의 도시 가족들이 함께 김장을 담근다.

“그렇지, 조금씩 그렇게, 옳지 잘하네! 아이고 귀여워라!”, 5세 여아 이윤율이 아장아장거리며 고사리손으로 김치 속을 떠내 절인 배추에 펴 바르자, 귀여운 모습에 아빠 엄마가 참지 못하고 연신 뽀뽀를 해댄다. 윤율이는 자기가 만든 김치가 맛있어 그러는 줄 알고 더 열심히 속을 떠 바르다 그만 속이 뭉쳤다. “아이고 짜라, 그렇게 뭉치면 안 돼요.” 윤율이 가족 바로 옆 테이블에서는 초등학교 4학년 오빠 박서원(11)이 의젓하게 김치를 버무린다. “자, 아 해봐라.”

테이블 바로 앞에서 김치를 담던 지역 아주머니가 서원이가 대견한 듯 갓 담은 김치 한 점을 건넨다. “맛이 어때?”

아주머니가 묻자, 고개를 쑥 내밀어 받아먹은 서원이가 웃으며 말한다.

“치즈 햄버거보다 맛있어요!”

지난 11월 28일 충남 아산시 외암마을 저잣거리 풍경이다. 이날 외암마을은 전날 첫눈이 내려 온 주변이 하얀 눈으로 덮였다. 하루가 지났어도 쌓인 눈은 족히 8㎝ 두께는 돼 보였다. 외암마을은 마을 북동쪽 설화산을 배산(背山)으로 양쪽으로 흘러내린 산기슭에 둘러싸여 있다. 맑은 하늘 아래 나무와 산은 마치 하얀 모자와 외투를 입은 듯했고, 인근 맑은 호수에 비친 마을은 한 폭의 수채화를 연상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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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은 특히 우리 전통의 기와집과 초가집을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관련 민속촌도 마련돼 운영되고 있다. 여성 한복의 선을 닮은 고운 기와지붕의 처마 위로 하얀 눈이 ‘톡톡’ 조금씩 녹아 물방울이 돼 떨어졌다. 초가지붕에서는 가끔 ‘우수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눈덩이가 떨어진다.

이날 문화일보 후원으로 농협중앙회가 진행하는 ‘식(食)사랑 농(農)사랑’은 외암마을의 겨울 풍경화 속에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농협중앙회와 농협은행 등 전 농협계열사 직원 가족들이 두루 참여한 행사였다. 이렇게 농협 가족들이 대거 모인 것은 ‘우리 배추로 만든 김치가 최고’라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알리기 위해서다. 주로 서울에 사는 농협 가족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꺼이 참여했다.

자가용으로 직접 도착한 이들도 있었지만 직원 대부분은 오전 8시 56분 서울역을 출발하는 기차로 이동했다. 일행이 서설로 반기는 외암마을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쯤. 이날 일정은 외암마을 저잣거리에서 전체 김치담그기 행사를 벌인 뒤 오후에는 주변 원골농장체험마을 등 6개 체험마을로 차량을 타고 최대 30분가량 이동해 감자 캐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하는 것으로 꾸려졌다.

농협 가족들이 모인 저잣거리 공터에는 2개의 대형 모닥불이 켜져 대형 천막으로 훈기를 넣어주고 있었다. 천막 아래 트럭으로 옮겨진 절인 배추들이 가족당 4포기씩 배분됐고, 이어 김치 속이 각 가족에게 전달됐다. 하얀 눈 덮인 산기슭을 배경으로 340여 명의 농협 가족들이 일제히 김치 담그는 모습은 어디서 보기 힘든 절경이다.

외암마을 현지 주민들이 갑자기 모여든 인원을 감당하지 못해 앞치마 등 여러 준비물이 부족해 참여한 농협 가족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아쉬움이 많이 남은 행사였지만 그래도 현지의 이런 미흡함은 눈 덮인 산기슭에서 김장 담그기라는 독특한 체험을 한 농협 가족들의 흥을 깨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점심 이후 준비된 ‘풍선·버블 쇼’는 이날 참여한 아이들은 물론 부모 마음마저 쏙 빼앗았다. 극단 옹기종기가 버블 쇼를 했고, 풍선 달인으로 세간에 알려진 신용국 씨가 풍선으로 학, 오리는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 인기를 끌었다. 경쾌한 음악에 신 씨가 풍선 한두 개씩을 붙여 캐릭터를 만들 때마다 농협 가족들의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신 씨는 만들어진 캐릭터를 바로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선물했는데, 아이들은 선물을 받기 위해 갖은 애교를 다 떨어 보는 부모들을 더 즐겁게 했다.

사실 이 행사는 ‘식사랑 농사랑’ 행사를 더 재미있고 보람있게 만들려는 농협중앙회의 고심이 담긴 것이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의 도움을 얻어 식사랑 농사랑 행사에 민요공연, 풍선 쇼 등 각종 문화행사를 더하고 있다. 식사랑 농사랑 운동이 지역 문화사랑 운동으로 한층 격이 높아진 것이다. 이날 앞에서 소개된 윤율이와 채윤(8)이 두 딸을 데리고 행사에 참여한 농협은행 총부무 이명헌(40) 씨는 “풍선 쇼 등 다채로운 행사에 사랑스러운 두 딸과 함께 만든 김치를 맛볼 수 있어 너무 즐거웠다”고 말했다.

농협생명의 김기훈(52) 씨도 “우리 고추와 배추로 만든 것이라 그런지 더욱 맛이 감칠났다”고 말했다. 저잣거리 주변에는 옛날 그대로 가게들이 열려 차와 음료수는 물론 만두, 부침개 등 먹거리를 팔아 농협 가족들의 입을 더욱 즐겁게 했다.

풍선과 버블 쇼가 끝나고 농협 가족들은 예정된 체험을 하기 위해 저잣거리를 하나, 둘씩 떠났다. 체험마을로 가 감자 캐기, 양초 만들기, 계란 꾸러미 만들기, 짚 공예 등을 체험했다. 가족들이 떠난 저잣거리는 타고 남은 장작불이 외롭게 마지막 훈기를 내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하얀 산기슭으로 사라져 갔다.

아산 = 박선호 기자 shp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