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명당으로 꼽히는 국립서울현충원의 전 대통령 묘소. 왼쪽 맨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이승만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묘소이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도선국사 절터는 기가 센 곳 기 눌러 주변 편안하게 해야

사는 곳의 좋은 점 찾아내고 조금씩 바꿔가면 그곳이 명당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지터가 각각 봉황의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이며 두 묘소가 봉황이 날개 안에 알을 품고 있는 형세인 ‘대명당’으로 풀이되면서 ‘풍수지리’와 ‘명당’이 새롭게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묏자리를 정한 지관(地官) 황영웅 영남대 환경보건대학원

풍수지리전공 교수는 “육신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회향(廻向)’, 육신뿐 아니라 영혼이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을 ‘영혼의 회향’이라 하는데,

YS 묘지터는 영혼과 육신의 회향이 동시에 일어나는 대명당”이라고 밝히고 있다.

땅의 형세나 방위를 인간의 길흉화복과 관련해 설명하는 풍수지리.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 곧 바람을 피하고 물을 얻는다는 말로, 자연 속에 사는 인간이 보다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욕망과 지혜가 혼합되어 이룬 학문이다. 직관에 의지하고 주관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에 미신으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결국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설명하고자 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것으로 여전히 우리 생활의 일부로 남아 있다. 하지만 현대인의 일상과 생활 환경이 조상들의 환경과 완전히 달라졌고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도시인들이 풍수지리를 따져 집터를 잡을 수도 없고, 명당을 찾아 묏자리를 쓸 수도 없게 됐다. 이와 관련해 풍수 지리학자인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는 “조상의 묏자리(음택·陰宅)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집(양택·陽宅)이 중요하며, 또 명당을 찾으려 하지 말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명당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우리 시대 명당은 어떤 곳인지 살펴본다.

◇음택 vs. 양택 = 풍수는 기본적으로 인간을 우주의 산물로 보고, 음(陰)의 기본이 되는 땅과 양(陽)의 기본이 되는 하늘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기의 흐름을 만들고, 이것이 우리 생활을 좌우하는 생명력으로 본다. 이에 풍수지리학은 흔히 음택과 양택으로 구분한다. 음택은 묘지, 납골당, 영안실 등 죽은 자를 위한 집을 뜻하고, 양택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 사무실, 가게 같은 곳을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풍수지리’라고 하면 명당을 떠올리고 명당이라면 자연스럽게 묏자리를 생각하게 된다. 한국 사람이라면 조상의 묏자리를 명당에 자리 잡은 결과 후손들이 성공했다거나 반대로 조상의 묏자리를 잘못 잡아 후대에 큰 화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황 교수는 “음택은 사람의 영혼이 이상적으로 환원될 수 있는 본래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터를 말한다. 죽음은 생명과 이어지고 세상의 에너지는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한 가문의)후손이 잘 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 후손뿐 아니라 연결된 사람들, 연결된 생명들이 모두 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음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최 전 교수는 “풍수지리가 개인의 구복을 위해 명당을 찾아다니는 것으로 또 그중에서도 음택 풍수가 유행한 것 자체가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음택은 결국 조상들의 음덕을 바라는 것이다. 음택보다는 양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명당 찾기 vs. 명당 만들기 = 예로부터 사람들은 사방이 둘러싸여 바람의 영향을 받지 않아 기가 흩어지지 않는 것을 장풍(藏風), 기가 산줄기를 따라 계속 흐르다가 물을 만나는 것을 득수(得水)라고 했다. 이 장풍득수가 제대로 되는 곳이 바로 명당이다. 하지만 최 전 교수는 한국 풍수의 시조인 도선국사(827∼898)가 말했던 명당이란 ‘병든 것을 고치기 위한 곳’이었다는 점에 주목하라고 조언한다. 실제로 도선국사나 도선의 맥을 이은 무학대사가 자리잡은 절터는 비가 오면 가장 빨리 물에 잠기거나 기세가 너무 세 좋지 않은 땅, 즉 위험한 곳이었다고 한다. 명당은 그곳에 묏자리를 잡으면 후손과 개인이 잘 되는 개인적 기복(起福)의 장소가 아니라 그곳의 기세를 눌러, 주변 사람들의 삶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런 위험한 땅이었다는 설명이다. 이어 최 전 교수는 “우리의 경우 평균 강수량 등을 볼 때 전국이 대부분 괜찮은 곳인 데 비해 중국의 화북지방의 경우 양자강을 기준으로 풍토가 너무 달라 좋은 터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다”며 “이 같은 중국의 풍수가 한국에 전해져 지금과 같은 명당 찾기로 변질됐다”고 지적했다.

최 전 교수는 우리가 흔히 명당이라고 하는 곳을 안다고 해도 땅값이 비싸면 누구나 현실적으로 가질 수 없고, 또 “흔히 남향이 좋다고 하지만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일괄적으로 다 적용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즉 아침에 떠오르는 해의 기운을 보는 것이 좋다는 점에서 남향이 좋지만 해가 너무 들 경우 먼지가 떠다니는 것이 다 보인다는 점에서 나쁘고, 또 옷가게나 생선가게의 경우 옷이 빨리 바래지거나 생선이 빨리 썩는 남향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이 비싼 돈을 들여 명당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의 좋은 점을 자꾸 찾아내고 살기에 편하도록 조금씩 바꿔가며 그곳을 명당으로 만들라고 충고했다. 사람도 단점에만 집중하면 더이상 좋은 점을 보기 어렵고, 좋은 점을 보기 시작하면 점점 그 사람이 좋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했다. 예를 들어 최 전 교수는 자신의 집은 아파트 1층으로 흔히 말하는 ‘로열층’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부인은 너무 밝지 않아 좋다고 하고, 아들은 엘리베이터가 고장나도 불편하지 않아서 좋다고 하고, 딸은 어떤 일이 벌어지면 금방 나갈 수 있다고 좋다며 좋은 점을 자꾸 찾아내다 보니, 가족들이 모두 좋아하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곳이 됐다고 했다. 한편 황 교수 역시 명당은 자연스럽게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나무 뿌리가 스스로 물을 찾아가고, 짐승들은 본능적으로 따뜻한 곳을 찾아간다. 아이들도 잘 때 몸을 비틀어 수맥을 피한다”며 “사람들이 마음을 닦으면 스스로 더 평온하고 안온하며, 고요한 곳을 찾아가게 된다. 그것이 바로 명당”이라고 말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