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이나 영국 런던 같은 해외 유명 도시 공항을 나오다 보면 한국인 장기 여행자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오랜 여행으로 단련된 그들은 대부분 자신의 머리보다 높이 솟은 큼지막한 배낭을 메거나 허름하지만 개성 있는 옷차림을 하고 있어 멀리서도 구분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외국인들 틈에서 꿋꿋하게 걷고 있는 그들을 보고 있자면 공부는 물론 취업이나 결혼에 다 때가 있다는 의식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장기 여행을 떠나기까지 그들이 온몸으로 견뎌냈을 시간들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찡해온다. 그래서일까. 나는 알 수 없는 내일을 향해 꿋꿋이 발걸음을 옮기는 장기 여행이 진짜 여행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직업이 항공기 승무원이라는 사실을 밝히면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어서 부럽다’는 것이고 이어 ‘전 세계 추천 여행지’에 관한 질문이 이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난처한 기분이 들고 만다. 비행 근무로 나간 해외에서의 체류라는 게 길어야 2∼3일이고 일본의 경우 하루 만에 바로 돌아오는 일정도 있는데 그렇게 짧게 다녀온 일정을 과연 여행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여행 명소를 추천하는 게 왠지 겸연쩍은 마음이 들고는 했다.

그러던 중 얼마 전 한 승무원 선배와 비행 체류지에서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체류지에서 스치듯 명소 몇 곳을 둘러보는 것은 진짜 여행이 아닌 것 같다”는 속내를 꺼내고 말았다. 그러자 선배는 웃으며 “그럼 네가 생각하는 진짜 여행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는 장기 여행자들을 떠올리며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이 아닐까요. 이를테면 배낭여행처럼요”라며 내 의견을 밝혔다. 그러자 선배는 “물론 장기간 결심하듯 떠나는 여행도 있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눈으로 생생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여행자의 마음’이 아닐까”라며 “호기심을 잃지 않고 주변을 낯설게 바라보는 능력에 따라 매일 반복되는 출근길 지하철도 유럽 어느 도시의 트램이 될 수 있고, 장기간 떠난 여행도 지루한 일상의 연장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듣고 보니 세상에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여행이 존재한다. 누군가는 식도락을 찾아 떠나고, 누군가는 특별한 레포츠를 즐기기 위해 떠난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려 떠나기도 하고, 혼자가 되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24시간 안에 출발한 공항으로 돌아오는 당일치기 ‘올빼미 여행’도 있고, 몇 년 동안 여행을 계속하는 사람도 있다. 결국 모든 여행은 위대해질 수 있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 경이로운 세상을 마주하고, 예리한 오감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순간에 몰입할 수 있다면 말이다.

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