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메릴 전 미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동북아 국장은 청년 시절부터 근 반세기 동안 한반도 관련 연구를 해온 타고난 현장형 학자다. 그는 보스턴에서 태어나 보스턴대 재학 중 군에 입대해 4년간 육군보안국에서 근무했다.

한국과의 인연은 군 생활 중 1년을 평택에서 근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이 시기 그는 구한말 대원군의 조선왕조 복원정책 등에 대해 논문을 썼는데 이 글이 하버드대 교수들에게 주목을 받으면서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다. 대학원에서는 제주도 4·3사건을 석사논문으로 썼다. 이 주제를 택한 것은 미국에서 4·3사건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데이비드 스타인버그 조지타운대 외교대학원 아시아연구소 소장의 조언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1982년 그는 델라웨어대에서 ‘한국전쟁의 기원’(Korea: The Peninsula Origins of the War 1945∼1950)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복사가 허용되지 않던 시절, 미육군도서관의 한국전쟁 관련 비밀문서를 일일이 필사해가며 연구한 결과물인데 그해 미대학원협의회 최우수 박사학위 논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메릴은 INR에서 동북아 국장으로 한·중·일 정세 전반을 관장해 왔지만 “나는 한국 스페셜리스트”라고 말할 정도로 한반도 문제에 애착이 강하다. 매일 미국 신문과 한국 신문을 읽으며 정보를 체크하고 한국드라마와 영화를 보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현장감을 유지해왔다. 10년 전 만났을 때 그는 당시 히트작이었던 강제규 감독, 원빈 주연의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대해 논평을 했는데 이번에는 SBS ‘용팔이’ MBC의 ‘화정’을 재미있게 봤다고 얘기했다. 부인 예숙 메릴은 미 의회 회계감사원 경제센터 부소장으로 일하는 한국계 경제학자다.

메릴은 국무부 은퇴 후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한미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조지워싱턴대와 조지타운대에서 한반도 문제 강의를 하고 있다. 지난 7월 타계한 돈 오버도퍼 한미연구소 초대소장이 활동하던 이 연구소에 언제까지 있을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그는 우리말로 “죽을 때까지…”라고 말했다. 오버도퍼가 기틀을 다진 한미연구소는 그렇게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의 든든한 둥지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