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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흥석 / 고려대 교수·행정학

가결된 발의 법안이 없는 국회의원 수가 전체의 3분의 1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우리 국회의 연봉 대비 입법 효율이 비교 가능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23위라는 지적도 있었다.

정치는 가장 강력하고 궁극적인 문제 해결의 수단이다. 예를 들어, 우리의 출산율이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은데,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아마도 정치를 통해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회 양극화의 심화, 청년실업, 노인빈곤, 사회 안전 등 우리 경제와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에 대해서도 정치는 의미 있는 해결의 실마리를 만들 수 있다.

한때 행정이 정치의 역할을 거의 대신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더는 없다. 이제 행정은 누구보다도 제 자리를 잘 파악하는, 지혜롭지만 소극적인 전문가들의 집단이 돼 정치의 결정을 기다린다. 결과 중심 행정으로의 개혁을 외치지만, 여기서의 결과란 문제의 해결이라기보다는 성과 지표의 개선이다. 그리고 이 성과 지표의 개선이라는 게 국민의 시각에서는 문제의 지속이요 반복이다. 예를 들면,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은 사회가 이미 더욱 안전해졌다거나, 최소한 앞으로 몇 년 후에는 더욱 안전해질 것 같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그리고 조만간 공기업의 부실 운영과 도덕적 해이가 크게 줄 것이란 느낌을 갖기도 어렵다.

이제 정치가 나서서 국민의 문제를 해결해줄 때가 됐다. 국민도 정치가 해결자 역할을 해 주기를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그렇다고 국회가 이러한 국민적 기대를 외면하고만 지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국회의 생산성이 무작정 계속 나빠져 왔다고만 보기는 어렵다. 제16대 국회에서 1912건이었던 의원 발의가 17대에는 6387건, 18대에 1만2220건, 그리고 19대에서는 9월 말 기준 1만5172건으로 크게 늘었다. 제19대 국회의원 300명이 3년3개월 동안 매월 389개의 법안을 발의한 셈이다. 그러나 가결률은 16대의 27%에서, 18대 13.6%, 그리고 19대에는 12.5%로 계속 많이 떨어졌다. 의원이 발의한 법안 10개 가운데 9개는 부결됐거나 상임위에서 처리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지표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회의원들이 수많은 법안을 밀어내 개인의 입법 실적을 높였지만, 대부분은 통과되지 못했다. 그리고 한국 경제와 사회가 지닌 큰 문제들은 여전히 지속되거나 악화하고 있고, 누군가의 제대로 된 간여를 기다리고 있다. 개별 의원들은 재선, 정당과 원내에서의 입지를 도모하며 열심히 입법 활동을 했는지 모르나, 정책 결정 기관으로서 국회는 국민의 복리와 국가의 흥망이 걸린 큰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온 것이다.

통과시키기 어려운 법안을 무수하게 발의하는 현상은 결국 우리에게 국가 정책 결정 및 문제 해결 기구로서 국회 개혁의 시급성을 일깨워준다. 국민을 위해 더 나은 정책을 발의할 의원의 충원을 위해 고민하고, 예산정책처 등의 입법 보좌 기능을 강화하며, 상임위 임기 보장 등 국회 운영 제도를 혁신하고, 국회방송 혁신 등을 통해 국민과 국회의 소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정치에는 두 가지가 있다. 생존을 위한 ‘어울림의 예술’과 ‘문제 해결의 정치’가 그것이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국회가 ‘어울림의 예술’만의 장이 돼선 곤란하다. 그리고 선거구 획정 시한 목전까지도 의원 정수조차 정하지 못한 것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