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의 활동가들은 싸울 줄만 알지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더라. 그들은 불쌍한 반도체 피해자 가족을 볼모로 잡아놓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반올림 관계자와 같이 활동했던 삼성전자 직업병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의 한 관계자는 12일 문화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반올림이 8년여를 끌어온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문제의 중요한 해결 고비마다 반대하고 나섰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반올림 측은 삼성이 사회적 합의인 조정위원회의 절차를 거부하고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입장이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와 가대위가 보상위원회를 구성하자 지난 7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시작했다.

◇ 근거 제시 없이 숫자만 늘어가는 ‘제보자 명단’= 삼성 측은 반올림이 자신들에게 제보한 ‘피해자’ 숫자를 근거로 삼성전자가 안전관리에 소홀해 발생한 책임을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반올림이 그 제보자의 숫자만 늘리고 있을 뿐 근거를 제대로 제시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반올림은 지난 3월 3일 산재 사망 추모제에서 삼성전자 피해 사망자가 71명이라며 명단을 공개했지만,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익명이어서 삼성전자는 신빙성에 의문을 갖고 있다. 또 지난 9월 7일 삼성전자의 보상위원회 발표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에서 반올림이 공개한 직업병 피해가족 54명 명단 가운데 24명이 ‘김○○’ 등 비실명이어서 사실 여부 확인이 불가했다고 삼성전자는 주장하고 있다.

이후 반올림은 각종 행사에서 제보자 숫자를 157명, 217명 등으로 발표하고 있지만 한 번도 이들의 전체 명단을 제대로 공개하거나 삼성전자에 제공된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올림과 같이 활동하며 이 같은 과정을 지켜봤던 가대위 관계자도 “제보자 명단이라는 것이 사실 근거 확인 없이 작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삼성전자가 꼼수 부린다”= 반올림 교섭단 간사인 공유정옥 씨는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삼성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 조정이 삼성전자의 보류요청에 더 이상 농락당할 순 없다”고 주장했다. 공 씨는 “삼성이 조속한 시일 내에 조정위의 조정을 이어가고 성실히 조정에 임하라”면서 “무능력하고 비인간적인 삼성 교섭단을 교체하라”고 덧붙였다. 문화일보는 공 씨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반올림 교섭단 대표를 맡고 있는 황상기 씨도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제 삼성에 달려 있다”면서 “우리는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이곳(삼성 사옥 앞)에서 이어 말하기 프로그램을 24시간 계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황 씨는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 “삼성이 만든 보상위의 기준이 공정하리란 보장이 없고, 개별 보상은 삼성 직업병 문제의 사회적 해결과 배치된다”며 “재발 방지와 사과가 빠진 보상위를 통한 개별 합의로 보상 문제만 끝내려 하고 사실상 조정위 제안을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