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박경서 동국대 석좌교수가 지난 2일 동국대 연구실에서 “북한 인권은 70년 분단의 질곡과 맞닿아 있다”며 “분단을 극복해야 북한 인권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남북 평화체계 구축 필요성을 밝히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He is out.”

1997년 7월 동교동에서 대통령 선거를 준비 중이던 김대중(DJ)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를 만나고 숙소인 서울 앰배서더호텔로 돌아온 박경서 당시 세계교회협의회(WCC) 아시아 국장은 곧바로 노르웨이로 국제전화를 걸어 이같이 말했다. 이 전화 한 통화로 그해 DJ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물 건너갔고, DJ는 대통령이 된 뒤 3년을 기다린 후에야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박 국장이 전화를 건 사람은 노르웨이 출신의 군나르 스탈셋 노벨평화상 위원회 부위원장이었고, 그는 “Okay, I know”라고 답했다.

WCC 활동을 통해 노르웨이 루터교 주교를 맡고 있던 스탈셋 부위원장과 친분이 두터웠던 박 국장은 그로부터 DJ가 노벨평화상 최종 후보자 명단에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다. 박 국장은 DJ의 ‘옥중일기’ 영문판을 유럽에 소개하고 노벨평화상 위원회에 DJ를 후보로 추천하는 등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He is out”이라고 한 것은 정치적 중립을 생명으로 하는 노벨평화상의 성격 때문이었다.

DJ가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는 유럽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스탈셋 부위원장이 박 국장에게 DJ의 의중을 파악해 달라고 부탁했다.

박 국장은 아내와 함께 귀국해 동교동에서 DJ 부부와 저녁을 같이했다. 이 자리에서 박 국장은 DJ에게 노벨평화상 최종 리스트 1순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러고 나서 “대통령 욕심이 있으면 안 된다. 노벨평화상과 대통령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시라”고 했다.

눈을 감고 박 국장의 얘기를 듣던 DJ가 5분쯤 있다 눈을 떴다.

첫말이 “인간이기 때문에 말을 하겠는데 둘 다 좋은 겁니다잉”이었다. 그러면서 “둘 중에 택하라면 대통령을 꼭 해보고 싶습니다”고 했다.

그는 DJ와 같은 호남 출신이지만 WCC 아시아 국장을 맡기 전까지 한 번도 DJ를 만난 적이 없었다. 인연은 1984년 미국에서 망명 중인 DJ가 박 국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면서 시작됐다.

DJ는 당시 국내에서 탄압을 받고 있던 문익환·동환 목사와 이문영·이우정 씨 등 민주화 인사들의 경제적 도움을 요청했고, 박 국장은 DJ까지 포함시켜 WCC 인권자금을 지원했다. 그 뒤 두 사람은 인연을 이어 갔고, DJ가 귀국 후 가택연금을 당했을 때 박 국장은 동교동을 찾아가기도 했다. DJ는 “노벨평화상을 어떻게 받는 겁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DJ가 1992년 대선에서 떨어진 뒤 유럽에 머물 때 DJ와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하기도 했다. DJ는 대통령이 된 뒤 귀국한 박 국장을 초대 인권대사에 임명했다. 박 석좌교수는 2000년 DJ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수상 로비설이 제기됐을 때 “노벨상은 로비를 하면 할수록 받지 못한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