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서해 먼바다를 지키며 절벽 위에 우뚝 선 전북 군산시 옥도면 어청도리의 섬 상징물 어청도 등대. 일제강점기인 1912년 설치됐으며 등탑은 백색의 원형 콘크리트 구조로 조형미를 살리기 위하여 등탑 상부가 전통 한옥의 서까래 형상을 하고 있다. 약 37㎞ 떨어진 바다에까지 그 등광(燈光)을 비추고 있으며, 해질 녘 등대 주변의 해송과 어우러진 풍경은 환상적이다.

능선따라 걷는 7㎞ 트레킹 코스 시원
1912년에 세워진 빨간모자 쓴 등대
37㎞ 거리서도 보이는 어선들 이정표

봄·가을엔 희귀 철새 228종 쉬어가
진풍경 보러 외국인들 발길 줄이어
가족 관광객 등 年 1만3000명 찾아

“그 섬에 가려거든 시곗바늘이 아니라 태양과 바다, 비와 바람에게 물어봐라.” 등대가 아름다운 섬 어청도(於靑島)는 전북 군산에서 서해 먼바다 쪽으로 70㎞쯤 떨어진 곳이다. 바다낚시의 천국으로 감성돔, 농어, 돌돔, 참돔, 부시리, 노래미, 우럭 등 낚시꾼들이 이름만 들어도 손끝이 짜릿할 만한 대어들이 낚여 올라오는 섬이다. 여객선 뉴어청훼리(114t)가 주중 1편, 주말 2편씩 왕복하지만 기상 상황이 수시로 변해 출항했다 되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화창한 날씨를 믿고 들어갔다 심술궂은 날씨 탓에 발이 묶여 하루를 더 묵어야 하는 곳이 어청도다. 그래서 더 가보고 싶은 섬이다.

지난 8월 입추(立秋) 절기가 무색하게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어청도를 찾았다. 북쪽을 등지고 조성된 섬 지형이 매서운 북서 계절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항구다. 취재팀이 승선한 뉴어청훼리가 어청도 항에 도착하자 낚시 장비를 짊어진 낚시꾼들과 트레킹 관광객, 군 장병 등 100여 명이 한꺼번에 내리며 한적하던 섬마을이 분주해졌다. 갯바위로 향하는 조사(釣師)들의 표정은 이미 팽팽한 낚싯줄을 타고 올라오는 짜릿한 손맛을 상상하듯 흥분된 분위기다.

배에서 내린 승객들이 흩어지자 흘러간 유행가 풍경처럼 섬마을에는 30여 척의 어선만이 정박한 채 한산한 분위기다. 마중 나온 김성래(62) 어청도리 이장을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앙상한 소나무가 섬 능선을 뒤덮고 있다. 김 이장은 10여 년 전 ‘솔잎혹파리’를 제때 방제하지 못해 빽빽하게 자생했던 적송 50%가량이 말라 죽었다고 말했다. 섬 특성 때문에 대규모 인력 투입도, 장비 동원도 어려워 벌목도 못 하고 대체수종도 제대로 식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어청도는 작은 섬이라고는 하지만 능선을 따라 트레킹 코스가 7㎞가량이나 조성돼 있다. 해발 100m 전후로 높지는 않지만 3시간 이상은 걸어야 완주할 수 있다. 희귀한 들꽃·야생초가 섬 구석구석에서 자생하고 있으며 봄·가을 세계적으로 보기 힘든 228종의 희귀 철새들이 거쳐 가는 곳이기도 하다.

매년 40∼50명의 외국인들이 이 희귀 철새 진객들을 보기 위해 어청도를 찾을 정도로 명성을 얻고 있다. 취재 도중 만난 아마추어 식물 탐구가인 박병윤(47·완주군청) 씨는 “섬 전체적으로 극상림 우점종(優占種)이었던 소나무가 솔잎혹파리로 말라 죽자 고사리 등 양치류와 초본류 등 희귀 식물의 보고(寶庫)로 변하고 있다”며 “식물군의 천이가 이뤄지고 있는 셈인데 섬(어청도) 특유의 고립성 때문에 생물학적 가치가 한층 높아진 곳”이라고 말했다.

그는 “희귀종인 콩짜개덩굴, 푸른여로, 번행초, 큰천남성 등 다른 섬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이 새롭게 정착해 나가고 있어 자연 생태계의 복원력과 치유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며 카메라 속 희귀 식물 사진을 보물처럼 소개했다.

‘어청도(於靑島)’를 한자 뜻풀이로 보면 ‘오 푸른 섬’쯤 된다. 그만큼 푸른 소나무가 많았다는 뜻이다. 중국 역사 속 어느 장군이 전쟁에 패해 500여 명의 휘하 장졸들과 함께 망망대해를 떠돌다 ‘오 푸른 섬’이라고 외쳤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다.

섬 주민이라고 해 봐야 주민등록상 400여 명이지만 실제 거주 인구는 이보다 훨씬 적은 150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 전체 면적은 2.07㎢에 해안선 길이는 10.8㎞쯤 된다. 사실 어청도에는 따로 버스나 택시 등 대중 교통편이 없다.

섬의 명물 ‘어청도 등대’를 구경하려면 30∼40분쯤 걸어 산등성이를 올라가든지, 동네 사람의 소형 트럭을 빌려 타야 한다. 백색 원형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37㎞ 거리에서도 등대의 불빛을 볼 수 있다는 어청도 등대는 일제가 청일전쟁(1894년)과 러일전쟁(1904년) 후 일본 오사카(大阪)와 중국 랴오둥(遼東)반도의 다롄(大連) 항로를 개설하면서 1912년에 세워졌다.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두 번째로 서해안에 불을 밝힌 등대다. 서해 먼바다를 향해 솟아 오른 61m의 절벽 위에 15.7m 높이로 세워진 어청도 등대(국가 등록문화재 제378호)는 아름답지만 그만큼 우리의 아픈 역사를 지켜온 상징물이기도 하다.

김성래 이장은 “(어청도는) 서해 영해기선(領海基線) 기점 중 하나이며, 동해 장승포와 함께 서해에서는 유일하게 1970년대까지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섬으로 한때 정주 인구만 1000명이 넘어섰던 곳”이라며 “최근 3∼4년 전부터 섬 방문객 수가 크게 늘어 순수 관광객만 연간 1만3000명을 넘어섰으며 대부분 바다낚시와 트레킹 관광객들이며, 어청도 등대를 구경하러 오는 가족동반 여행객들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어청도=글·사진 박팔령 기자 park8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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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크게보기 사진 위부터 어청도 트레킹 코스 중 한반도를 닮은 지형과 어청도 희귀 야생초인 ‘콩짜개덩굴’, 조개캐기를 하고 있는 주민들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