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세계 5대 미세조류 보유국 이끈 허성범 전 부경大 교수

양식업에 꼭 필요한 분야
차세대 에너지로도 유용
‘물고기 사랑’ 시집 출간도

“우리 수산업과 해양과학 발전을 위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부경대 실습선과 학생들의 도움이 컸죠.”

30여 년간 미래자원인 플랑크톤 등 미세조류 2400여 종을 찾아내 우리나라를 세계 5대 미세조류 종(種) 보유국으로 이끈 한 대학교수의 집념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2월에 정년 퇴임한 허성범(해양바이오 신소재학과·사진) 전 부경대 교수는 지난 1982년 부임 직후부터 국내 처음으로 미세조류인 플랑크톤 종 분리에 도전, 성공한 이후 지금까지 무려 2419종을 확보하는 성과를 냈다. 그 덕분에 미세조류 연구 불모지였던 한국은 미국, 영국, 독일, 일본에 이어 세계 5대 미세조류 종 보유국이 됐다. 플랑크톤은 바다 생물의 최하위 먹이생물이자 산소를 생산해 해양 생태계를 유지시키는 필수 요소다.

19일 허 교수는 “각종 어패류의 기본 먹이인 플랑크톤을 확보하지 못하면 양식산업 자체가 발전할 수 없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이 양식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데는 허 교수의 노력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미세조류는 갈수록 더 중요해지고 있다. 석유를 대체할 바이오디젤을 생산할 수 있고, 각종 조류가 가진 생리물질은 의약품이나 화장품, 건강기능식품의 원료로 쓰여 미국 등이 각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허 교수는 전했다. 국내에서도 대학 및 제약·화장품회사, 병원 등이 허 교수가 운영하는 미세조류은행에서 각종 미세조류를 공급받아 사용하고 있다. 크기가 2~3㎛(100만 분의 1m)에 불과한 미세조류의 종을 분리해내는 것은 까다롭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채집한 바닷물이나 민물을 현미경에 올려놓고 정밀한 기구로 필요한 종을 분리하고 나서 항생제로 세균을 제거해야 한다. 또 1~4개월마다 새로운 환경에서 배양해야 하므로 하나의 종을 분리하는 데 평균 6개월이나 걸린다.

허 교수는 “그동안 연구실에서 부숴 먹은 현미경만 5~6대 정도는 될 것”이라며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드는 기초는 쌓았으니 후학들이 고생 좀 덜하고 더 진보된 연구를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경대 실습선 중 한 척이 남해와 동해, 다른 한 척은 원양에서 실습항해를 하면서 내가 부탁한 지점에서 바닷물을 채취해 줘서 많은 미세조류 종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서해안과 내륙의 미세조류는 일일이 직접 찾아가 물을 떠와서 분리해야 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정부는 미세조류 연구의 가치를 인정해 1995년에 ‘연구소재은행’으로 지정, 매년 허 교수의 연구를 지원해 왔다. 허 교수가 퇴임함에 따라 10㎖짜리 시험관 하나에 한 종씩 보관된 2419종의 미세조류는 조만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으로 옮겨 간다. 대학 측은 “동일한 연구과제의 책임자에게 국가가 이처럼 장기간 지원을 한 것도, 필생의 연구성과가 국가로 옮겨져 계속 연구되는 것도 처음”이라고 밝혔다.

허 교수는 “과학기술지식만이 능사가 아니라 물고기를 잘 기르려면 물고기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며 10년간 학생들에게 ‘물고기 마음’을 주제로 시를 제출하라고 해 최근 350편을 모아 ‘물고기 사랑 시’를 엮은 시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부산=김기현 기자 ant735@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