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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희곡페스티벌 낭독 공연 ‘게으름뱅이들의 천국’ 구혜미 작가

대학로 무대에서 호평받은 ‘나와 할아버지’(2015), ‘지금도 가슴 설렌다’(2013), ‘뺑뺑뺑’(2014)은 ‘남산희곡페스티벌’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남산예술센터가 2009년 재개관 후 ‘창작 초연 제작형 공공극장’을 표방하며 이어온 활동 중 하나다. 국내 희곡 창작을 견인하기 위해 센터는 전체 라인업에서 번역극이나 기발표 희곡을 배제하고 창작극을 최우선시했다. 특히, 페스티벌은 젊은 작가의 미발표 신작과 ‘초고를 부탁해’(희곡 및 작가 발굴 시스템) 우수작의 낭독 공연을 선보이며 연극계 안팎에서 “새로운 시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오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제5회 남산희곡페스티벌의 낭독 공연 선정작인 ‘게으름뱅이들의 천국’의 구혜미(34·사진) 작가를 최근 센터에서 만났다. 아동극과 판소리극 등 기 발표작이 있는 구 작가가 연극 대본을 쓴 건 이번이 처음이다.

―희곡 제목이 네덜란드 화가 페테르 브뢰헬(1525~1569)의 풍속화와 같다.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나.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속에서 천국은 죽으로 된 장벽이 흘러내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곳으로 밝혀지며 끝났다. 브뢰헬의 풍자화를 마주했을 때, 내 나름으로 ‘게으름뱅이들의 천국’을 그려보고 싶어졌다. 우리 사회는 ‘게으름’이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그런데 진정한 게으름이란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 같다. 나는 자주 만화영화 코난을 본다.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웃음)”

―등장인물의 이름에서 성격이 금세 드러난다. 관객과 소통하기 좋은 작명이다.

“김지년은 ‘김치녀’, 구로기는 게임에서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을 때 ‘그로기 됐다’고 하는 표현에서 왔다. 이배충은 ‘일베충’, 나노라는 ‘나 놀아’이기도 하고 헨리크 입센(1828~1906)의 ‘인형의 집’ 속 로라이기도 하다. 공통점은 노력한 만큼 온당한 결과를 얻을 수 없는 사회에 산다는 거다. 타인을 통해 원하는 것을 쟁취할 수밖에 없다.”

―고교 졸업 후 바로 한국종합예술학교에 입학했다. 드문 경우인데, 창작을 위한 다양한 경험은 어떻게 쌓았나.

“나는 동기들보다 4~5살이 어렸고, 그들에 비해 부족한 경험을 축적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한정식집, 당구장, 미용실, 교회 등. 위장취업? (웃음) 맞다. 일하며 만난 사람들이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배운 게 많다.”

―경험 외에 창작 활동에 도움을 주는 건 무엇인가.

“도스토옙스키(1821~1881)처럼 신문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어 글을 쓰는 습관이 있다. 댓글도 잘 적어둔다. 굉장히 기발하기도 하고 때론 가슴 아프고 답답하다. 자꾸 어떤 프레임 안에 타인을 가두려는 시도가 보이니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1927~2014)를 가장 좋아한다. 그처럼 시니컬하면서도 우화적으로 이야기를 풀고 싶었다.”

―극에서 핵심은 ‘구멍’이다. 이야기를 전부 공개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그래도 조금 설명해달라.

“주인공들은 어떤 구멍 속으로 떨어지고, 그 사실을 곧 잊는다. 삶에 지치고, 욕망에 미쳐버려서. 무관심한 사이 구멍은 점점 커지고, 다시 그들을 집어삼킨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은 잔인한 설정이다. 전작 ‘아빠를 찾아라’도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았다.

“헛된 희망을 주는 건 창작자로서 기만행위다. ‘게으름뱅이들의 천국’ 속에 성공신화는 없다. 관객들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이를 통해 냉철하게 현재를 돌아볼 수 있다면 족하다.”

글 =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사진=서울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