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정보위원회 해명에도 불구, 새정치민주연합은 28일 기존에 요구했던 34개 자료 제출 요구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들 자료가 민간인 사찰 의혹 규명의 핵심이라는 주장인데 거꾸로 국정원 입장에서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중대 비밀이라는 점에서 제출 불가 입장으로 맞서 있다. 34개 자료가 공개될 경우 대북 정보망의 붕괴뿐 아니라 정보전력의 누출이라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중 야당이 요구하는 34개 자료의 핵심은 국정원이 이탈리아 보안업체 해킹팀으로부터 구매한 리모트컨트롤시스템(RCS)의 테스트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4년치 모든 로그파일을 모두 제출하라는 것이다. 로그는 프로그램 작동 정보와 관련된 기록으로, 이를 통해 사용자가 언제 어떻게 어느 프로그램을 통해 무슨 작업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로그파일에 민간인 사찰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핵심 정보가 들어 있다는 게 야당 주장의 핵심이지만, 국정원은 민간사찰은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자료 분석 및 조작 여부 판단을 위해 외부전문가가 로그파일을 직접 분석하도록 해야 한다는 야당에 비해 국정원은 현장 방문하는 의원들을 상대로 공개는 가능하되 제출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로그파일에 국정원의 모든 해킹 경로와 성공 및 실패 횟수 등이 기록돼있기 때문에 국가 정보기관의 해킹 전력과 그간의 해킹 방법이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이날 “로그파일은 일종의 작업일지로, 의혹 해소 수준을 넘어 날짜별로 세세한 대북 공작 사항까지 전부 드러날 수 있다”며 “특히 이러한 정보가 북한 등에 흘러들어 간다면 국가적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야당은 RCS 운용 관련 자료 외에도 유사 해킹 프로그램의 구매 여부 및 자체 연구·개발(R&D) 내역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RCS로 민간인 사찰을 했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 사이버 첩보 전력을 무분별하게 노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냐에 대해서는 우려가 나온다.

인지현 기자 loveofall@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