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테이프를 칭칭 감은 배구선수 김혜진의 손.

스포츠 선수들의 손

불세출의 투수 고 최동원과 선동열 전 KIA 감독의 맞대결을 소재로 한 야구영화 ‘퍼펙트 게임’에선 공을 던지다 살점이 찢어진 손가락에 접착제를 바르고 공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한 영화적 상상력. 야구를 포함한 운동선수들에게 손은 재산목록 1호다. 사용 빈도가 높은 탓에 손은 혹사당하고, 부상이 매우 잦다. 그래서 손 관리는 운동선수에겐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손톱관리, 미용이 아닌 생존 문제 = 야구, 농구 선수들에겐 손톱이 가장 민감한 부위다. 프로야구 KIA의 투수 서재응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메츠에서 뛰던 시절 손톱 때문에 승리투수 기회를 날린 적이 있다. 지난 2004년 5월 6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했으나 2-1로 앞선 5회 초 손톱이 깨져 마운드를 내려왔고 구원투수가 동점을 허용했다. 이후 서재응은 손톱 관리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서재응은 “선발투수로 나설 땐 등판 이틀 전에 항상 손톱을 간다”고 밝혔다. 손톱깎이로 잘라내는 게 아니라, 손톱을 가는 ‘줄칼’을 이용한다.

한화의 선발투수 안영명은 오른손 중지의 손톱이 잘 깨지는 편이다. 이 덕분에 ‘노하우’가 생겼다. 등판 하루 전에 ‘콜로스킨’이라는 손톱강화제를 바른다. 안영명은 “손톱강화제를 바르면 시간이 지나면서 손톱이 딱딱하게 굳어져 부상을 예방해 준다”고 설명했다. 일본 프로야구 한신 타이거스의 마무리투수 오승환도 손톱강화제를 사용한다.

손톱 부상을 자주 유발하는 구종은 포크볼.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웠던 공이 손가락을 빠져나가면서 손톱 옆부분에 걸려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손톱 옆쪽을 짧게 자르는 게 중요하다. 손톱 관리를 잘못해 등판을 못한 사례도 있다. SK 김광현은 2009년 6월, 선발 등판이 예정된 전날 미리 손톱을 깎다가 왼손 검지 손톱 주위를 베이는 바람에 한 차례 등판을 걸러야 했다. 손톱이 부러졌을 경우 간혹 영화 퍼펙트 게임에서처럼 접착제를 이용해 붙이기도 한다.

농구 선수들은 손톱 길이에 특히 공을 들인다. 선수 출신인 김성헌 프로농구 전자랜드 사무국장은 “특히 슈터들의 경우, 슛을 던질 때 공이 손톱 끝에 긁히는 느낌을 좋아한다”며 “그래서 줄칼을 이용해 손톱을 늘 일정한 길이로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공을 주고받다 보면 손톱이 깨지기 일쑤. 그래서 동부의 윤호영과 박병우, kt의 이광재 등은 손톱에 투명 매니큐어를 바른다. 매니큐어를 바르면 손톱이 전체적으로 두꺼워져, 파손될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손가락엔 테이프를 칭칭 = ‘농구대통령’ 허재 전 KCC 감독의 왼손 새끼손가락은 구부러진 채 굳어있다. 인대가 끊어졌는데 제때 치료를 하지 못했기 때문. 허 전 감독은 “요즘은 손가락을 다치면 곧바로 치료받지만 예전에는 테이핑하고 진통제 먹고 그냥 뛰었다”고 귀띔했다.

공을 강하게 치는 배구도 손가락 부상이 잦다. 그래서 손가락에 테이프를 칭칭 감고 경기를 치른다. 배구 공격수는 스파이크를 때리는 검지와 중지에 따로 테이핑을 하지만, 강스파이크를 블로킹해야 하는 센터는 충격을 덜기 위해 손가락 2∼3개를 한꺼번에 묶는 식으로 테이핑을 한다. 여자 프로배구 도로공사의 이희성 트레이너는 “한 달에 선수 18명이 손가락에 감는 테이프 값만 400만 원이 든다”고 설명했다. 여자 선수들은 네일숍 등을 찾아 손톱부터 손바닥까지 전문 관리를 받는다. 또 건조해진 손에 계속 배구공으로 충격이 가해지면 손바닥 등에도 상처가 날 수 있기에 보습에도 신경을 쓴다. IBK기업은행의 세터 김사니는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핸드크림을 바른다”고 밝혔다. 도로공사 리베로 오지영은 항상 장갑을 끼고 벤치에 앉는다.

◇물집과 굳은살은 가장 큰 ‘적’ = 투수의 경우 물집은 골칫거리. 투수들은 물집이 생기면 바로 터뜨리고 상처가 낫기를 기다린다. SK의 백인식은 “2013년 엄지손가락 물집이 터졌는데 참고 던졌다가 속살까지 벗겨진 적이 있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에는 물집으로 유명한 투수가 있다. 통산 5714탈삼진으로 메이저리그 역대 1위에 올라있는 놀란 라이언이다. 라이언은 물집 예방과 치료를 위해 손가락을 피클 주스에 담그는 ‘비법’까지 사용했지만 물집의 악몽을 떨쳐내진 못했다.

양궁 선수들은 양손에 굳은살이 박인다. 그것도 왼손, 오른손 부위가 다르다. 왼손은 활 손잡이 안쪽을 강하게 지탱해야 하는 엄지 안쪽 부분에 굳은살이 생기고, 활 시위를 당기는 오른손은 둘째∼넷째 손가락 두 번째 마디가 돌처럼 딱딱하게 된다. 2015 세계양궁연맹 1차 월드컵 여자 단체전 금메달 멤버인 최미선은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크다. 최미선은 “오른손 손가락 마디가 굵어진 건 물론 손톱의 길이까지 길어졌다”며 “굳은살 때문에 반지 같은 건 낄 엄두도 못 낸다”고 말했다.

김성훈·박준우 기자 tarant@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 굳은살이 박여있는 양궁선수 오진혁의 손.

이미지 크게보기 KIA 투수 서재응이 경기를 앞두고 줄칼로 손톱을 손질하고 있다. 문화일보 자료사진

이미지 크게보기 허재 전 감독의 구부러진 채 굳어진 왼쪽 새끼손가락. 문화일보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