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회에서 법안이나 정치적 쟁점을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이거나 처리를 미룰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안건 처리의 ‘절차’ 자체가 부정돼선 안 된다. 법안 등 안건 발의 요건과 형식, 상임위 회부 및 의결,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 및 자구 점검, 본회의 표결 등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진행돼야 한다. 과거 다수당의 강행 처리와 소수당의 실력 저지가 횡행할 때조차도 기본적 절차만은 고수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12일 국회 본회의와 앞서 법사위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보여준 모습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

특히 새정치연합 소속의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해당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 심의·의결까지 마친 57개 법안에 서명을 않는 방법으로 본회의 부의(附議)를 막았다. 이 법안들은 여야 간 조정이 모두 끝나고 법안으로서 자구 수정까지 마친 상태로, 법사위원장의 전자 결재는 ‘요식적인 절차’다. 본회의를 앞두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은 절차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부정이다. 새누리당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는 지적과 함께 ‘월권(越權)’ 주장이 나올 만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런 권한을 준 국민에 대한 배임(背任), 국회에 대한 업무방해에 해당할 수도 있다. 법사위원장직(職)을 국회의 직책이 아니라 ‘야당 당직’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국민과 국회의 입장보다 야당 원내지도부의 방침을 더 앞세운다면 국회직을 맡을 자격이 없다. 혹시 소속 정당으로부터 그런 요청을 받더라도 국회의 원칙과 절차를 앞세워 거절하는 것이 옳다.

이런 사정으로 5월국회 첫 본회의에서 소득세법 개정안 등 3개 법안만 처리됐음에도 이종걸 새정치연합 원내대표는 “이 정도면 많이 양보했다”고 했다. 국민과 국회보다 당리당략을 더 중시한다는 점에서 이 위원장의 행동과 맥락이 같다. 법안 처리는 국회의 가장 기본적 책무다. 그럼에도 ‘3개 처리’를 양보로 치부하고, 자화자찬한다면 이런 책무에 대한 배신이다. 이 위원장의 결재 거부로 처리가 무산된 법안 중에는 학자금상환특별법,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 등 민생과 밀접한 법안도 수두룩하다. ‘국회선진화법’ 독소 조항에서 비롯된 야당의 국회 무력화(無力化) 횡포가 도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