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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흠 / 연세대 교수·경영학

올해 주총에서는 고배당 요구가 예사롭지 않다. 정부는 소비 진작과 증시 부양을 위해 배당 확대 방침을 세우고 기업을 압박해 왔다. 국민연금은 과소 배당 기업을 가려내 여차하면 주주권을 행사할 기세다. 배당주 펀드도 덩달아 주목을 받아 왔다.

기업 이익은 어차피 주주의 재산으로, 배당은 이 주머니에서 저 주머니로 옮기는 행위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당 확대 요구는 그칠 줄 모른다. 순이익에서 배당이 차지하는 비율인 배당 성향과 주가 대비 배당 수준인 배당수익률이 선진 시장은 물론 신흥 시장들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주가가 이익을 비슷하게 내는 외국 기업의 주가에 비해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배당 수준이 낮은 탓으로 돌린다. 그런데 국가 간 비교에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우선, 평균의 차이가 실상을 왜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기업 전체의 배당금은 증가했으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상장회사 수는 오히려 줄었다. 소수의 대기업이 배당금의 대부분을 지급하고, 업력이 짧고 이익이 적은 기업들은 배당금을 거의 지급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제상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상장회사 주식의 양도소득에 대해 소액주주에게는 과세하지 않는다. 반면에 배당소득에는 과세하기에 돈이 필요하면 배당보다는 자본이득을 선호한다. 정부가 배당을 늘리기를 원한다면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거나 배당소득세율을 낮추면 된다. 미국도 배당소득세율을 낮추자 배당금을 지급하는 상장회사 수가 대폭 증가한 적이 있다.

안정적으로 낮은 부채비율을 보여 온 다른 나라와는 달리 우리는 제조업 평균부채비율이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300% 이상에서 지난해 70% 이하로 떨어지는 급변의 시대를 거쳐 왔다. 기업들이 이익으로 부채를 상환하거나 자본을 확충해 왔으니 배당이 적은 것은 당연하다.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낮아졌기에 외부 충격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버텨낼 수 있었다.

기업은 유망한 투자 기회를 포착하면 배당을 줄여 투자에 사용해야 한다. 당장 배당을 받지 못하지만 미래의 배당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다면 주주들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성장하는 중소·벤처 기업들은 배당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애플사도 2012년 이전에는 배당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 사업이 안정 단계에 들어선 기업은 이익이 많이 나고, 투자에 필요한 자금도 언제든지 외부에서 쉽게 조달할 수 있어 고배당이 가능하다. 여유자금을 과다하게 유보해 두면 경영자가 주주 이익에 반하는 엉뚱한 곳에 써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배당 압박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지배구조 개선 효과가 있다면 주가 상승과 증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고배당을 유지할 자신이 없는 대다수 기업에 배당 확대는 투자 여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투자 자금을 주식발행이나 차입 등을 통해 외부에서 조달하게 되면 각종 비용이 발생해 투자 가치를 낮춘다. 자금시장이 경색되면 투자 기회를 날릴 수도 있다. 이렇게 배당은 투자와 자금 조달 및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결정에는 고도의 사업 정보와 경영 판단이 필요하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배당을 분기 실적이 나올 때 이사회에서 확정한다. 기업 사정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경영자에게도 난해한 배당을 정기주총에서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 다양한 처지의 주주들에게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배당에 대한 주주들의 입장은 저마다 다르다. 배당소득으로 생활하는 주주는 배당을 좋아한다.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식 일부를 팔았는데 주가가 오르면 후회할까 걱정도 된다. 여유자금을 운용하는 주주는 소득세를 내야 하는 배당을 좋아하지 않는다. 따라서 투자금 회수를 위해서도 이익을 배당으로 주는 것보다 자기 주식을 취득해줘 자본이득을 보게 하는 것이 더 낫다.

이제는 기업이 나서서 투자자가 각자의 형편에 맞는 투자 대상 기업을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경영 여건은 물론 자사에 적합한 주주 구성도 고려해서 투자자를 유인하는 배당 정책을 세울 때다. 배당 정책을 발표한 후에는 배당 정책을 지키려는 노력도 보여야 한다. 투자자가 예측 가능한 배당이 돼야 외부의 배당 간섭을 막고 주가 상승과 증시 활력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