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경악 이슬람국가(IS) 대원이 이라크 모술 인근에서 기원전 9세기쯤 세워진 석상을 전동 드릴로 파괴하고 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전문가들은 IS가 26일 공개한 동영상을 분석한 결과, 이 석상을 모술 외곽 니네베에 있는 ‘니르갈의 문’의 ‘라마수(날개 달린 황소)’ 석상으로 지목했다. AP 연합뉴스

“님로드 유적이 다음 타깃” 국제사회 경악… 대응 촉구

극단이슬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지난해 여름부터 장악하고 있는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에서 선지자 무함마드 탄생 이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대대적인 ‘청소’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모술에 있는 박물관과 도서관의 수많은 유물은 물론이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인근 고대 유적들까지 남김없이 파괴하고 있는 IS의 만행에 이슬람권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IS의 문화재 파괴 만행을 지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근본주의 집단 탈레반에 의한 바미얀 석불 파괴와 지난 2012년 아프리카 이슬람근본주의 무장조직 안사르딘의 말리 팀북투 유적 및 유물 파괴에 버금가는 참사로 규정하고 국제사회의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IS는 모술에서 고대유물들을 파괴하는 장면을 담은 5분 정도의 동영상을 26일 공개했다. 동영상엔 큰 망치를 든 사람들이 박물관으로 보이는 곳에 전시된 석상과 조각품을 깨부수거나 넘어뜨려 훼손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야외에 있는 거대한 석상을 전동 드릴로 부수는 장면도 담겼다. 이 영상에서 IS 대변인을 자처한 남성은 기원전 24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과 아카드 왕국을 ‘다신주의 숭배’로 비난하면서, “신이 (우상) 제거를 명했으니 이것(고대유물)들은 수십억 달러짜리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선언했다. 알자지라, AP통신 등은 이 남성이 말하는 장면이 끝나면 바로 IS 대원들이 유물들을 파괴하는 장면이 이어진다고 전했다.

모술고고학대의 아미르 알 주마일리 교수는 26일 AP, BBC 등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영상 속에 등장하는 파괴 장소를 모술시립박물관과 모술 외곽 니네베에 있는 ‘니르갈의 문’으로 확인했다. 티그리스강 동쪽에 있는 니네베는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곳으로, 기원전 9세기쯤 세워진 ‘니르갈의 문’은 니네베로 들어가는 관문 격으로 유명하다. 영상 속에서 IS 대원들이 전동 드릴로 파괴하는 라마수(‘날개 달린 황소’란 의미) 석상이 바로 ‘니르갈의 문’에 있는 석상이란 것이다.

현재 모술 외곽으로 피신해 있는 알 주마일리 교수는 “이제 모술에 문명은 존재하지 않게 됐다”며 참담한 심정을 토로했다. 익명의 모술 주민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니네베 유적에 이어) 다음은 님로드 차례란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모술로부터 동남쪽 약 30㎞ 지점에 있는 님로드 역시 아시리아 제국의 핵심 도시 중 하나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유적, 유물들이 남아 있다.

IS는 지난해 7월부터 모술에서 성서 속 예언자 요나가 묻힌 곳으로 전해져오는 나비 유뉴스 묘지, 약 300년 된 교회와 도미니카수도원 등을 폭파했고 지난 22일에는 모술공공도서관에서 폭탄을 터트려 희귀서적과 고문서 약 1만 점을 한꺼번에 태워 없앴다. 현지 주민들에 따르면, IS는 지난 1월부터 모술 내 각 도서관에서 이슬람 관련 서적만 남기고 거의 모든 책을 파괴하거나, 트럭에 실어 모처로 옮기고 있다.

기독교계인 시리아군사위원회(SMC)의 지도자 키노 가브리엘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IS는 사람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명과 문화까지 파괴하고 있다”며 “시리아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엄청난 손실”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출신의 작가 마르딘 아이작 역시 “IS가 고대사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문화적 역사적 )권리까지 파괴했다”고 비난했다. IS는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교 창시 이전 문명, 문화를 ‘우상숭배’란 이유로 파괴하면서도, 상당수는 외국에 고가로 팔아 남겨 막대한 돈을 챙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애리 선임기자 aer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