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가서 따라야 할 것이 ‘로마법’만은 아니다. 비즈니스와 여행 스케줄을 정상적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바늘이 달린 손목시계가 착착 움직이는 것처럼 ‘로마의 시간’에 맞춰 우리 몸의 생체 시계도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문제는 몸의 생체 시계의 ‘메커니즘’이 손목시계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차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몸은 혹독한 대가를 요구하기도 한다. 두통, 소화불량, 무기력증, 불면증 등 증세가 짧게는 이틀에서 1주일 넘게 우리를 괴롭힌다. 그래서 시차 적응 여부는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출발한 여행을 단숨에 망칠 수 있는 최대 복병으로 꼽히기도 한다. 만 8년 차 비행 경력을 통해 체득한 ‘시차증후군(jet lag syndrome)’ 극복 노하우를 공유하고자 한다.

시차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양질의 수면이다. 가능하다면 비행 탑승 며칠 전부터 여행하려는 국가의 시간대에 맞춰 취침시간을 조절하는 것이 좋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비행기 탑승 시점부터라도 최대한 도착지의 시간대에 맞춰 잠을 청해야 한다. 항공기에서 제공되는 잔잔한 음악을 듣는 것도 좋고, 승무원에게 요청해 수면용 눈가리개와 귀마개를 이용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이때 너무 억지로 잠을 자야겠다는 강박 관념은 오히려 수면을 방해할 수 있다. 긴 비행시간 동안 편하게 쉬겠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신체는 휴식을 시작한다.

둘째는 식사조절이다. 채소와 과일류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비타민B는 시차 극복에 도움이 된다. 따라서 기내식으로 제공되는 채소와 과일만이라도 남기지 않고 먹을 것을 권한다. 또 해발 10㎞의 고도비행으로 낮아진 기내기압은 체내 공기를 팽창시켜 소화장애 증상을 유발할 수 있다. 이때 물 위주의 음료를 자주 섭취하면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촉진해 소화는 물론 수면에 도움이 된다. 다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술을 여러 잔 마시거나, 억지로 깨어있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이뇨작용을 촉진해 자칫 탈수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체력관리이다. 좋지 않은 컨디션과 체력저하 상태에서의 비행기 탑승은 대부분 시차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많은 운항 및 객실 승무원들은 장거리 비행에 운동화와 운동복을 잊지 않는다. 목적지에 도착해 여장을 풀면 가장 먼저 운동화 끈을 동여매고 헬스장이나 햇빛을 쬘 수 있는 야외로 나가 땀을 흘린다. 땀을 내는 운동이 부담스럽다면 걸어서 관광지를 둘러보거나, 쇼핑 일정을 잡는 것도 좋다.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 해소는 물론 당일 저녁 숙면을 유도해 짧은 시간에 시차 적응을 도와준다. 시차를 극복하는 방법을 잘 활용해 모든 승객들에게 더 즐겁고 추억 가득한 해외여행이 되길 바란다.

대한항공 승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