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하는 동맹국 한국에 핵연료 농축·재처리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 여러 가지 명분과 이유가 있다. 우선 미국은 미래 어느 시점에선가 한국 정부의 핵 개발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1970년대 핵무기 개발을 시도한 바 있고, 일부 과학자들이 1980년 플루토늄 분리와 2000년 우라늄 농축 실험을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원죄론(原罪論)’이다.

여기에 한국 내 ‘핵 주권’이나 ‘핵 민족주의’ 정서 등은 미국의 의구심을 더 강하게 만드는 요인들로 분석된다. 실제로 강경 그룹에서는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핵무장 옹호론이나 적어도 일본 정도의 핵무장 잠재력은 보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이 아무리 핵 개발 의지가 없다고 미국 측에 설명해도, 미국은 믿을 만한 물증을 보여주기 전까지 신뢰를 보내 주지 않고 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 핵 전문가와 정부 내에서는 우리 스스로 핵 개발 ‘원죄론’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1970년대 국가 안보를 위해 대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시대적 상황론’과 당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막 출범한 초기, 국제사회의 핵 비확산체제가 제대로 갖춰지기 이전이었다는 점을 적극 설득해야 한다는 논리다.

무엇보다 베트남 공산화와 닉슨 독트린에 따른 주한미군 일부 철수 등 한반도가 심각한 안보 위기에 처해 있었다. 박정희정부는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직후인 1974년 10월 프랑스와 따로 원자력협정을 맺었다. 프랑스의 핵연료 재처리 기술을 들여와 1980년대 초까지 핵무기를 독자 개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시 미국이 언제 한국을 버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듬해 프랑스 외교부의 일방적인 계약 파기가 미국의 방해공작 때문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후 핵 기술 개발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일부 과학자들의 실험은 또 한번 미국을 놀라게 했다.

1980년 플루토늄 분리 실험이 연구실에서 비밀리에 진행되다 알려졌고, 2000년 핵연료 국산화 연구 차원에서 실험 도중 추출한 0.2g의 우라늄 실종 사건이 4년 뒤 큰 파문을 일으켰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팀은 2004년 8월 29일 방한해 2000년 상황을 정밀 조사했다. 당시 과학기술부는 2000년 1∼2월 가도리늄, 탈륨, 사마리움 등의 분리 연구 과정에서 극소수(0.2g)의 우라늄 분리 실험이 행해졌다고 밝혔다. 2004년 한국의 IAEA 안전조치 추가의정서 비준 전인 2000년 실험 당시에는 보고 의무가 없었다는 점이 해명됐지만 미국, 영국 등 핵보유국 언론들은 한국 정부가 개입한 작품으로 해석하는 기사를 잇달아 보도했다.

방승배 기자 bsb@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