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건 찌라시로 밝혀졌는데
시중 여론에 떠밀리 듯
인사않겠다는 의지도 반영”

박근혜 대통령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과 상당수 수석들을 교체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도 12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조직개편’이라는 표현을 고집한 것은 여러 가지 정치적 고려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은 13일 “박 대통령이 여론에 떠밀리듯 인사권을 행사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고생해 온 참모들에 대한 예우도 생각한 것 같다”고 전하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대통령으로서는 ‘찌라시’ 수준에 불과한 문건 하나에 나라가 흔들렸다는 판단과 강도 높은 인적쇄신을 요구하는 여론 사이에서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며 “신년 회견에서 ‘인적쇄신을 하겠다’고 얘기하지 못하고 조직개편이라는 말로 다소 애매하게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위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청와대 문건이 100% 조작됐다고 확신하는 박 대통령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 김 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을 내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대통령은 그 대신 청와대 조직 개편과 국민과의 소통, 신뢰 회복을 위한 거듭남의 노력 등을 약속함으로써 추후 인적쇄신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신년 회견에서 김 실장을 ‘정말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고 높이 치켜세우는 모습을 보며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물러난다는 사실을 발표했던 장면이 오버랩 됐다”며 “시간 차를 두고 거취를 정리하게 하면서 고생했던 참모들을 배려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실장의 사퇴는 기정사실로 굳어져 가는 가운데 관심은 추가 인적쇄신 대상자가 누가 될지, 규모는 얼마나 될지에 쏠린다. 현재 청와대의 수석 이상 13명(실장 3명, 수석 10명) 중 가장 오랫동안 재직한 사람은 1기 멤버인 박흥렬 경호실장과 유민봉(국정기획)·주철기(외교안보) 수석 등 3명이다. 2013년 8월 임명된 김기춘 실장과 윤창번(미래전략)·최원영(고용복지) 수석이 그다음이다. 김관진 국가안보실장과 조윤선(정무)·윤두현(홍보)·안종범(경제) 수석과 이미 면직된 김영한 전 민정수석이 2014년 6월 임명됐다. 이 밖에 정진철 인사수석이 2014년 8월,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이 2014년 11월 임명됐다.

일단 임명된 지 오래된 사람들이 우선적인 교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있지만, 일 처리 능력이나 충성도와 열정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 상 누가 인적쇄신 대상이 될지는 좀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남석 기자 greente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