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배제한 북한과의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피력하고 한국을 미래 한반도의 ‘첫째 영향력 행사자(first influencer)’라고 언급했다.
　
16일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중 공동과제와 협력전망’ 세미나에서 “우리는 한국이 미래 한반도의 첫째 영향력 행사자라고 믿는다”면서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는 한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러셀 차관보의 언급은 북한의 전통적인 통미봉남(通美封南) 외교 전술에 대해서 미국의 분명한 대북 대화와 협상의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그는 북·미 직접대화와 관련해 “미국은 그동안 북한과 직접 대화하려고 노력해왔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북·미 대화를 하는 데서 주저한 적이 없다”면서 “북한과는 지금도 직접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러셀 차관보는 “대북 대화와 협상은 구별돼야 한다”고 덧붙여 북·미 직접대화가 이뤄져도 북한과의 협상 단계에서는 한국이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표명했다. 그는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길은 북·미 양자 협상을 통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못 박았다. 러셀 차관보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6자회담에서 합의한 9·19공동성명에 기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러셀 차관보는 북한이 비핵화에 대한 혜택을 제시하겠다는 의지도 나타냈다. 그는 “북한이 비핵화 합의를 지킬 경우 어떤 혜택이 있을지를 제시할 용의가 있지만, 북한이 협상 시작의 기본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러셀 차관보는 “핵무기 개발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북한의 병진노선의 꿈은 이뤄질 수 없다”며 “핵 개발을 평화적으로 중단시키고 궁극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러셀 차관보는 현재의 한·미관계에 대해서 “역대 어느 때보다 좋은 상태로 미국은 한국 정부의 생각과 구상을 매우 신중하게 듣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미얀마 네피도에서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의 개최를 전격 제안한 것과 관련해 “일단 3국 외교장관이 회담하고 나면 정상회담도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가 있다”며 “이는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좋은 신호”라고 평가했다.

워싱턴=이제교 특파원 jkle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