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3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대명스카다 연구개발실에서 박재승(왼쪽 두 번째) 대표와 직원들이 김호순(오른쪽 첫 번째) 한국서부발전 동반성장팀 차장과 자체 개발한 발전소 부품 설비를 살펴보고 있다. 곽성호 기자 tray92@

지난 3일 기자가 찾은 서울 금천구 가산동 에이스하이엔드타워 소재 대명스카다. 박재승 대표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김호순 한국서부발전 동반성장팀 차장이 보였다. 지난 1997년 6월 설립된 이 회사는 전기제어설비 정비와 연구·개발에 주력하는 발전설비 전문 중소기업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외부 손님은 납품이나 계약과 관련된 인사들인 경우가 많지만, 이날 따라 동반성장 담당자들이 모인 이유가 궁금했다.

세 사람을 통해 알게 된 대명스카다와 한국서부발전 간의 인연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대표는 1992년부터 발전용 부품을 생산해 발전사에 납품하던 중소기업인이었다. 본래 경남 지역에서 사업을 하다, 1995년부터 인천 지역에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서인천화력발전소에 부품을 납품하게 됐다.

이후 2001년 서인천화력발전소를 관리·운영하는 회사가 한전에서 분사돼 한국서부발전으로 바뀌었지만 7년 넘게 거래관계를 이어온 데다 제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덕분에 상호 신뢰가 형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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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두 회사의 관계는 2010년 공동으로 부품 개발에 착수하게 되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당시 서부발전은 발전설비에 사용되던 고가의 외국산 제어 스위치가 단종돼 대체 제품을 찾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고민하던 서부발전은 민관공동투자기술개발사업을 활용하면서 대명스카다에 국산 제어 스위치의 공동 개발을 제안했다.

이 제안은 서부발전이 민간 중소기업에 제안했던 최초의 연구·개발(R&D)과제였다. 2010년 11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진행된 이 과제에 투입된 예산은 총 1억4400만 원으로, 정부와 서부발전은 각각 5400만 원, 대명스카다는 3600만 원을 부담했고, 개발 착수 1년 만에 외국산이 점령하고 있던 발전용 제어 스위치가 국산화될 수 있었다.

단순하게 보면, 정부와 공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중소기업의 R&D 비용을 분담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사업의 구체적인 파급력은 제품 개발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확인된다. 대명스카다가 개발한 제어 스위치는 2012년부터 서부발전에 수의계약으로 납품되고 있다. 사업을 통해 값비싼 외국산 발전 부품의 국산화를 이뤘을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판로가 확보된 것이다. 첫 번째 사업의 성과에 고무된 서부발전과 대명스카다는 더 큰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전동밸브 현장모니터 장치 개발에 착수했고, 첫 번째 사업과 같은 방식으로 2013년 8월부터 1년여의 개발작업 끝에 제품 개발에 성공하게 됐다. 대명스카다는 민관공동투자기술개발사업 참여를 통해 서부발전과 부품 개발에 성공하고 판로 개척까지 가능해지면서 발전 플랜트 분야 전문회사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냉장고용 수납용기 전문 제조업체인 두두월드의 임기순 대표도 민관공동투자기술개발사업의 또 다른 예찬론자다. 직장생활을 하다 2005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임 대표는 냄비와 쿠커, 저장용기 등 다양한 주방용품을 선보이다, 2012년 현대홈쇼핑과 거래를 시작하면서 사업 확장의 호기를 맞았다. 이 회사가 출시한 냉장고 소분용기(소량의 음식재료를 보관하는 용기)의 단점을 파악한 현대홈쇼핑 담당자는 민관공동투자기술개발사업을 통한 제품 업그레이드를 제안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뚜껑에 밀폐기능이 없어 용기에서 국물이 새거나 흐르는 현상이 생기니 용기의 재질을 보완하고 뚜껑을 밀폐형으로 바꾸자”는 현대홈쇼핑의 제안대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했다. R&D에 들어간 1억 원 중 두두월드는 2500만 원만 부담했고 나머지는 3750만 원씩 정부와 현대홈쇼핑이 투자했다.

현대홈쇼핑의 제안대로 출시한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는데 결과는 대박이었다. 올해 6월 17일 개시 이후, 현대홈쇼핑에서 총 27회 판매돼 64억7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고 4번이나 매진을 기록했다. 국내에서의 뜨거운 호응을 바탕으로 임 대표는 수출도 할 수 있었다. 올해 9월 미국에 1차로 15만 달러 상당의 소분용기를 수출한 데 이어 내년엔 중동지역으로 판로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정부와 투자기업이 공동으로 협력펀드를 조성해 중소기업의 R&D 자금을 지원하는 민관공동투자기술개발사업이 대·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17일 대중소기업협력재단에 따르면, 이 사업은 정부와 투자기업이 공동으로 중소기업의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지원자금(협력펀드)을 미리 조성한 후 투자기업의 신제품 및 국산화 개발수요에 따라 개발 과제를 발굴·제안하고, 정부는 개발에 적합한 중소기업을 선정하여 개발비를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R&D에 투자할 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정부와 투자기업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하면 자금 조성에 참여한 투자 기업을 통해 판로까지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으로 꼽힌다.

이런 장점 때문에 사업에 참여하는 대기업과 공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올해 10월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포스코를 비롯한 대기업 30개사와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를 포함한 공기업 14곳 등 총 투자기업 44개사가 총 6180억 원의 협력펀드를 조성해 운영하면서 중소기업들의 R&D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노기섭 기자 mac4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