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고구려인이 시조가 된 일본 고마 신사에서 토시마사(왼쪽) 곤네기와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마(高麗)군 사람들은 고구려에서 온 이주민이 1300년 전에 이 마을을 만들었다고 믿고, 감사한 마음으로 시조로 모시고 있죠. 다이쇼(大正)·쇼와(昭和) 시대에 이 신사에 참배한 정치인들이 크게 출세한 경우가 많아 ‘출세 신사’로도 유명합니다.”

혐한(嫌韓), 반한(反韓)이 간토(關東)대지진 때만큼이나 극성이라고는 하지만, 일본에는 한국인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도 존재한다.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에 자리한 고마 신사. ‘고마’의 한자는 ‘고려(高麗)’. BC37년에 건국해 668년에 멸망한 한반도의 고대 국가 고구려를 의미한다. 신사는 고구려계통 이주민들이 세운 것으로, 당시 그들의 수장이었던 작코(若光)를 제신(祭神)으로 한다. 현재 지명은 흔적을 감췄지만, 신사는 716년에 신설된 고마군의 오랜 중심지다.

지난 11월 3일 신사에서 만난 아사가 토시마사(淺賀壽仁) 곤네기(權니宜·일본 신사에서 제를 지내거나 사무를 보는 직책 중 하나)는 “지역민들에게 작코는 이 지역을 있게 한 신(神)이다. 고마운 마음을 갖는 게 당연하다. 한국 관광객은 많지 않지만 재일한국인들이 뿌리를 찾는 마음으로 종종 온다”고 전했다. 고마 신사에 대한 기록은 ‘니혼쇼키(日本書紀)’와 ‘쇼쿠니혼기(續日本紀)’에 총 3번 등장한다. 니혼쇼키는 고구려 멸망 이전인 666년, 작코가 속한 고구려 사절단이 야마토(大和) 조정에 파견되었다고 하며, 쇼쿠니혼기에서는 703년 이 작코가 일본 조정에서 ‘고키시(王)’라는 성을 부여받았고, 716년 인근 7개 지방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인 1799명과 함께 무사시노(武野)에 고려군을 설치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토시마사 곤네기는 “작코의 자손이 60대를 이어 내려오면서 궁사(신사의 최고 신관)를 맡아오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일본에서도 매우 드물다”며 “고마 씨 계보에 작코의 후손들이 걸어온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에서도 요즘 보기 힘든 장승이 고마역과 신사 입구에 서 있는 것도 반갑다. 신사와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마을의 기원이 한반도임을 계속 기억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동행한 김민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고구려인을 신으로 모신 신사가 있다고 해서 과도한 문화적 우월감을 갖는 건 양국 관계를 더욱 불편하게 만든다. 가해와 피해의 역사를 떠나서도 고대 문화의 전파 경로를 따져 보면 고마 신사와 같은 사례가 한국에 생겨나는 건 힘들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고대든 근·현대든 정치 이데올로기에 따라 우열을 나누는 해석보다는 그저 문화의 한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역사 갈등 근원인 천황 숭배 이데올로기 역시 과도한 우월감을 심다가 생겨난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고마 신사는 2016년 고마군 건군 1300돌을 앞두고 대규모 축제를 준비 중이다. 이해 5∼12월에 걸쳐 ‘도래인 포럼’ ‘고마 문화재 특별전’ 등을 준비 중이다. 토시마사 곤네기는 “1300년 행사를 계기로 한국에서 고마 신사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양국이 보다 사이좋게 지냈으면 한다”고 전했다.

도쿄 = 글·사진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